학생기자단과 함께 하는 교실 속 NIE, ‘역사 진로직업 체험’, ③역사 속 과학자와 발명품 이야기- 과학자, 대한민국의 주춧돌이 되다.
학생기자단과 함께 하는 교실 속 NIE, ‘역사 진로직업 체험’, ③역사 속 과학자와 발명품 이야기- 과학자, 대한민국의 주춧돌이 되다.
  • 권성하 기자
  • 승인 2018.06.1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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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역사 속 과학자와 발명품 이야기- 과학자, 대한민국의 주춧돌이 되다.

교육사랑신문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8년도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역신문활용교육의 일환으로 ‘교육사랑신문 학생기자단과 함께 하는 교실 속 NIE, 역사 진로직업 체험’을 총 12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역사 속 인물들의 직업과 생애를 통해 오늘을 사는 학생·청소년들의 꿈과 끼를 키우고, 진로와 직업의 세계를 풍부하게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세 번째 주제는 ‘과학자’입니다. 과학자는 기술문명에 기초한 현대사회의 고도한 지적 전문직입니다. 우리 역사 속 과학자는 어떤 인물이 있는지, 학생기자들과 함께 그들의 땀과 열정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우리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과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 촘촘하게 엮여있는 과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대과학을 기초로 하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는 눈부신 성과를 이뤄냈다.

안타깝게도 많은 아시아 국가처럼 한국도 자연에 대한 과학적 상식이나 과학적 합리주의에 일찍 눈을 뜨지 못했다. 면면히 흘러 내려온 과학의 전통을 갖고 있으면서도 종교와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과학·기술인에 대한 예우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결과는 뻔했다. 압도적인 과학기술력을 앞세운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고, 식민지배의 뼈아픈 역사로 이어졌다.

21세기는 지식과 정보가 근원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지식기반 사회다.

과학기술력이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원동력이다. 과학을 중시하고, 과학문화가 꽃피울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훌륭한 업적을 이뤄낸 과학기술인의 발자취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과학문화재단의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http://www.kast.or.kr/HALL )'에는 선진 과학 문명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열등의식을 씻어준 위대한 과학선구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의 과학자는 지금까지 모두 33분이다.

최무선, 이천, 장영실, 이순지(사진 왼쪽부터)는 고려말과 조선 전기 과학기술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최무선, 이천, 장영실, 이순지(사진 왼쪽부터)는 고려말과 조선 전기 과학기술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연대기순으로 가장 첫번째 인물은 최무선(崔茂宣, 1325~1395)이다. 최무선은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과 화약무기를 개발한 고려 말의 장군이자 과학자다. 화약제조법은 당시 중국의 첨단기술이고, 오랜 연구 끝에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화통도감을 통해 개발한 20여 종의 화약무기로 군대를 중무장했고, 왜구 격퇴 등 정치·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조선 세종시대에 활약한 이천(李蕆, 1376~1451)은 15세기 세계 최고 수준의 천문, 인쇄 분야를 이끈 과학자다. 장영실과 함께 천문기구인 간의, 일성정시의, 해시계인 앙부일구 등을 만들었고, 금속활자 기술의 혁신을 이뤄냈다. 그가 완성한 '갑인자'는 금속활자 인쇄기술의 백미로 꼽힌다. 세종시대 과학기술의 밑바탕이 되는 도량형 표준화도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장영실(蔣英實, 1390~1450)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기계기술자다. 세계 최초의 '측우기'와 자동시보장치를 지닌 정교한 기계식 물시계인 '자격루'와 '옥루', 해시계인 '앙부일구',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 각종 금속활자 제작에 참여했다. 우리 과학기술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세종시대를 꽃피우는데 기여했고, 노비 출신이라는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삶은 교훈과 감동을 준다.

세종대왕(世宗, 1397~1450)은 15세기 한국 과학기술을 세계 최고로 끌어올린 과학자이자 혁신의 리더다. 조선의 4대 왕이며 재위기간 웅대한 과학기술 정책을 수립하고, 왕립학술기관인 집현전을 설립해 체계적인 발전을 이끌었다. 한글 창제를 비롯해 천문, 지리, 인쇄, 국방, 의료, 농업 등 모든 과학기술 분야에서 대형 국책 과제를 주도한 성군(聖君)이자 민족의 아버지다.

조선의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 1406~1465)는 세종시대 천문역법을 정리한 '칠정산'내편과 외편을 완성했다. 이 역법책은 당대 세계 최고 수준이면서 서울(한양)을 기준으로 하는 자주적인 역법의 완성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칠정산'은 이후 청나라의 시헌력과 서구 역법이 들어오기까지 오랫동안 조선 역법의 기본이 됐다.

허준(許浚, 1539~1615)은 한국 한의학을 우뚝 세운 의학자다. 그의 '동의보감'은 조선과 중국에서 어지럽게 전승됐던 양생과 의학을 훌륭하게 묶어내 병의 치료와 예방, 건강도모를 한꺼번에 해결한 세계 최고의 의서(醫書)다. '찬도방론맥결집성', '언해구급방', '언해태산집요', '언해두창집요', '신찬벽온방', '벽역신방' 등 수많은 의서를 집필했고, 한글로 번역해 의학의 대중화에 기여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수학자도 있다.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은 조합수학의 창시자인 오일러를 앞지른 조선의 천재 수학자다. 그의 책 '구수략(九數略)'은 17세기 기초 수학과 역학(易學) 이론을 결합한 수학이론서다. 그가 발견한 '9차 직교라틴방진(九次直交LATIN方陣·Pair of Orthogonal LATIN squares of order nine)'은 조합수학(Combinatorial Mathematics)의 효시로 알려진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의 직교라틴방진에 관한 논문(1776) 보다 61년 이상 앞선 쾌거다. 지난 2007년 조합론디자인편람에 언급되면서 국제적으로 세계 최초임을 인정받았다.

조선의 천재 수학자 최석정은 저서 '구수략'에서 조합수학의 창시자인 오일러보다 수십년 앞서 '9차 직교라틴방진'의 이론을 설명했다.
조선의 천재 수학자 최석정은 저서 '구수략'에서 조합수학의 창시자인 오일러보다 수십년 앞서 '9차 직교라틴방진'의 이론을 설명했다.

조선 전기 과학진흥에 세종대왕이 앞장 섰다면 후기에는 정조대왕이 있다.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은 조선의 과학기술을 혁신적으로 이끌었던 리더들이다.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은 조선의 과학기술을 혁신적으로 이끌었던 리더들이다.

세종 시절 최고의 과학기술의 업적이 훈민정음 창제와 천문과학의 융성이라면 정조 시절의 최고는 성과는 홍대용의 지전설과 건축 기술이다. 정조는 1776년 즉위 이후 학문연구기관인 규장각을 설치하고, 조선 과학의 중흥을 이끌었다. 수원화성을 건설하면서 거중기 녹로 등 건축·과학기술을 진일보시켰다.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은 자유로운 사고와 실증적 연구로 우주 만물의 이치를 파고들었던 재야 천문학자다. 그가 쓴 '의산문답'은 지구 자전설과 무한우주론을 담은 것으로 유명하며 18세기 성리학적 사고체계의 상식적인 틀을 벗어나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조선 후기 천문역산가인 서호수(徐浩修, 1736~1799)는 관상감 제조로서 정조 시대 천문역산 활동을 총괄했다. 1789년 국가 표준시간 체제를 정비해 전국 팔도의 밤낮 시간과 절기를 정확하게 계산했다. 중국에서 들여온 서양 수학과 천문학을 정리해 전파했고, 우리와 기후와 풍토가 다른 중국의 농업기술을 선별적으로 받아들인 ‘해동농서’를 편찬했다.

정약전(丁若銓, 1758~1816)은 수산학과 해양생물학을 태동시킨 학자다. 저서 '자산어보(玆山魚譜)'를 통해 한국 수산학과 해양생물학 백과사전을 완성했다. 유배지인 흑산도 근해에 서식하는 해양생물을 상위범주와 하위범주로 체계적으로 분류해 해양생물의 명칭, 크기, 형태, 생태, 맛, 어획방법, 이용법 등 수산학 정보를 세밀하게 기록했다. 그가 정리한 55류 226종의 상호 관련성은 18∼19세기 근대 생물학 태동기의 자연 분류법 및 자연 명명법과 흡사하다.

김정호(金正浩, 1804~1866)는 전통 지도학을 집대성한 지리학자이자 지도제작자다. 전통 지도학의 결정판인 '대동여지도'와 '청구도', '동여도' 등 3대 지도와 함께 '동여도지', '여도비지', '대동지지'라는 3대 지리서를 편찬했다는 점이 최고의 업적이다. '동여도지'는 '동국여지승람'의 필요한 부분을 발췌해 보충했고, '여도비지'는 18세기 말 정조 시기에 이룩한 정보를 확충해 전국 278개 지역의 경도와 위도를 수록했다. 대동여지도와 짝을 이룬 '대동지지'는 조선 지리서 편찬의 전통과 실학적 지리학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으로 평가된다.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과 조선 최초의 해양생물학자 정약전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과학자다.
'조선의 코페르니쿠스' 홍대용과 조선 최초의 해양생물학자 정약전은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과학자다.
국가 표준시간을 정비해 전국의 밤낮 시간과 절기를 정확하게 계산해 낸 서호수와 지리학자이자 지도제작자인 김정호 선생(사진 왼쪽부터)은 조선 과학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국가 표준시간을 정비해 전국의 밤낮 시간과 절기를 정확하게 계산해 낸 서호수와 지리학자이자 지도제작자인 김정호 선생(사진 왼쪽부터)은 조선 과학의 다양성을 상징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 위대한 열정으로 ‘과학입국(科學立國)’ 대한민국의 주춧돌을 놓은 과학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독수리자리 에타성의 정체를 밝혀냈던 이원철, 벌거벗은 산에 새 옷을 입혀주었던 임목육종학자 현신규, 리-아이링 이론(Ree-Eyring Theory)으로 세계 화학계의 주목을 받았던 이태규, 금속학자이면서 한국 과학기술 행정의 기초를 다진 최형섭, 유행성출혈열 병원체인 한탄바이러스와 서울바이러스를 세계 최초로 발견한 '한국의 파스퇴르’ 이호왕 박사 등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과학자들이다.

인류의 역사는 발명의 연속이다. 선사시대 불을 발견하고, 돌을 다루는 기술적 단계도 발명의 하나였다.

과거나 현재는 미래를 향한 발명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발명가였다.

'발명'의 사전적 의미는 과학적 창의와 기술적인 아이디어를 통한 새로운 방법과 기술, 물질, 기구 등에 대한 창조 활동이다. 쉽게 말해 인류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윤택하고, 가치있게 만드는 고민의 결실이다.

발명이 점차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발명가'라는 전문적 직업이 생겨났다.

인류의 기원에서도 발명의 흔적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나 청동기시대 이후의 민무늬토기는 열전도율과 직화로 인한 단점을 고민하고 보완해 낸 발명품이다. 흙과 돌을 다루던 시대에서 쇠를 다루는 시대로의 전환도 발명의 결과다. 청동은 구리(Cu)와 주석(Sn)을 더한 합금이다. 구리와 주석, 아연을 섞는 합금기술은 한반도에서도 비파형동검, 청동거울, 청동방울 등으로 출토되고 있다.

흙과 돌을 다루던 시대에서 쇠를 다루는 시대로의 전환은 발명에서 비롯됐다. 왼쪽부터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 각종 청동기 제품들.
흙과 돌을 다루던 시대에서 쇠를 다루는 시대로의 전환은 발명에서 비롯됐다. 왼쪽부터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 각종 청동기 제품들.

많은 한국인들은 발명가에 대한 로망이 있다. 한국인의 DNA 속에는 배움과 깨달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삶의 철학이 흐른다. 존재와 지식, 가치, 이성, 인식, 언어 등 일반적이며 기본적인 대상의 실체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연구한다. '한글'이 대표적이다. 첨성대와 측우기, 금속활자 등도 세계가 인정하는 과학문화유산이면서 우리 민족의 과학적 재능과 창조적 과학정신이 담겨있는 발명품이다.

한국인들은 오랜 기간 하늘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다. 천문대는 대표적인 발명품이다. 경주에 있는 신라 첨성대는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다. 고구려도 천문대를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현존하지 않는다. 다만, 고구려 벽화에 천문도가 남겨져 있다. 현재 북한의 개성에는 고려시대 첨성대가 남아있다. 조선시대 1688년에 만든 창경궁 관천대는 높이 3m 계단 위에 소간의를 설치해 천문을 관측하던 시설로 당시 왕이 직접 천문을 관측할 만큼 천문우주가 '왕의 학문'으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첨성대는 신라시대 천문대로 국보 제31호다. 개성 만월대 서쪽에는 고려첨성대로 알려진 석제 구조물이 있지만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첨성대는 신라시대 천문대로 국보 제31호다. 개성 만월대 서쪽에는 고려첨성대로 알려진 석제 구조물이 있지만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천문우주에 대한 관심은 인간의 삶과 밀접하다. 하늘의 움직임을 제때 알아채지 못하면 농사의 성패를 장담하기 힘들다. 삼국사기나 삼구유사에 수많은 자연현상을 기록한 것도 같은 이유다. 특히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지진, 태풍, 홍수 등 다양한 자연현상 기록이 있으며 중국기록에도 없는 240여개의 독자적인 천문기록을 담고 있다. 일식, 월식, 유성, 오로라 등 삼국시대의 독자적 천문학 관련 서술은 오늘날 천문학 주기로 따져 본 결과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돌에 새긴 밤하늘의 기록도 있다.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과학실에 우뚝 서 있는 비석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국보 제228호)'는 조선 태조가 고구려 시대 평양에서 각석한 천문도인 '평양 성도(星圖)' 비석의 탁본을 바탕으로 돌에 새긴 천문도다. 태조는 하늘의 뜻을 표방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공표했다. 천상열차분야지도는 하늘의 모습(천상)을 목성(열차)을 기준으로 하늘의 별자리 구역을 나눠(분야) 하늘 12구역과 지상 12구역을 대응시킨 지도라는 의미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천(全天) 천문도 중 하나이면서 세계적인 보물로 손꼽힌다.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은 돌에 새긴 밤하늘의 기록이다.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은 돌에 새긴 밤하늘의 기록이다.

민생에 각별하게 신경을 썼던 세종대왕 역시 천문에 관심이 많았다. 수많은 천문 발명품이 쏟아졌고, 백성들의 삶에 큰 영향을 줬다. 당시 제작된 혼천의, 간의, 일성성시의, 규표 등의 천문 관측 기구와 앙부일구나 자격루 같은 해시계와 물시계, 측우기 등은 농경사회에서 서민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물건들이었다. 구조물 외에도 '칠정산', '농사직설', '훈민정음' 등 서적 출판이 이어졌고, 음악, 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세종 시절의 과학적 업적을 뚜렷하다.

'혼천의'의 원리는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플라네타리움에서 살펴 볼 수 있다. 플라네타리움은 천체의 운행을 나타내는 기계로 천장을 둥글게 하고, 별자리 등 천체를 비춰 실제로 밤하늘을 보는 느낌을 준다. 

'솥이 하늘을 향했다'는 뜻을 가진 해시계 '앙부일구'는 시간에 따라 그림자의 길이가 달라지는 평면 해시계의 단점을 보완한 발명품이다. 세종대왕은 경복궁의 첫 관문인 광화문 근처에 앙부일구를 설치하고, 모든 백성이 시간을 알 수 있도록 했다.

'혼천의'와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의 대표적인 천문기구이자 해시계다.
'혼천의'와 '앙부일구'는 조선 세종 때의 대표적인 천문기구이자 해시계다.

'일성성시의'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해와 별로 천문 관측과 시간을 알 수 있는 발명품이었고, '규표'는 계절의 변화까지 알 수 있었던 막대 해시계였다.

'자격루'는 해의 그림자가 없으면 시간을 알 수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발명된 물시계다. 물을 이용한 지렛대와 부력의 원리가 활용됐다. 자격루의 작동 방법은 큰 항아리 '파수호'에서 흘러내린 물이 원통 항아리인 '수수호'를 채우면 부력으로 살대가 떠오르면서 지렛대에 전해진 동력이 쇠구슬을 떨어뜨려 동판 한쪽을 치면 나무인형이 시보장치를 때려서 움직이는 원리다. 나무 인형들은 시간이 되면 스스로 움직여서 각각 종과 북과 징을 쳐서 시간을 알렸다. 일종의 오토마타인 셈이어서 보는 사람들이 신기함에 넋을 잃었다. 세종 대 자격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됐고, 16세기에 다시 만든 자격루가 덕수궁 경내에 옮겨져 있다. 국보 제229호다.

덕수궁에 보관된 국보 229호 자격루.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것을 개량하여 중종 때 새로 만든 것이다.
덕수궁에 보관된 국보 229호 자격루. 세종 때 장영실이 만든 것을 개량하여 중종 때 새로 만든 것이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발명품은 수원화성의 공사 기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거중기'를 꼽을 수 있다. 거중기는 도르래(활윤·滑輪)의 원리를 적극 활용한 발명품으로 오늘날의 기중기와 같다. 실학자로 유명한 다산 정약용 선생이 고정도르래와 움직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해 만든 첨단 건축 장비다. 정조대왕이 추진한 수원화성은 가로 1.5m, 세로 1m, 무게 2000kg 정도의 돌을 5m 높이로 쌓아서 만든 성이다. 원래 10년의 공기가 예상됐지만 거중기의 활약 덕분에 불과 2년 반 만에 완성됐다.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첨단 건축장비인 '거중기'는 10년으로 예상됐던 수원화성 공사기간을 2년 반으로 줄인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첨단 건축장비인 '거중기'는 10년으로 예상됐던 수원화성 공사기간을 2년 반으로 줄인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