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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체육 현장을 가다] 대전월평중, 한국 여자농구의 희망을 쏜다
[엘리트체육 현장을 가다] 대전월평중, 한국 여자농구의 희망을 쏜다
  • 김상희 기자
  • 승인 2025.05.07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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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랑신문-대전시교육청 특별기획] 월평중, 옛 중앙여중 DNA 간직한 '대전 유일' 여중농구부 요람

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은 대부분 정부 주도의 엘리트체육을 통해 양성된다. 누구나 좋아하지만 따라하기 힘든 고난도 기술은 아마추어나 생활체육에서는 탄생하기 어렵다. 엘리트체육은 확실한 성과를 내는 시스템이면서도 인기 종목에 비해 관심이 덜해 지원이 적은 비주류 스포츠까지 육성하는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 비인기 종목에서도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선수를 키워내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어도 어린 시절부터 집중적인 훈련과 경험을 통해 성장치를 최대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올해 제54회 전국소년체육대회와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에 역대 최고 성적에 도전하는 대전시교육청이 어린 학생선수 발굴과 육성에 매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전교육청은 학생 훈련 전용시설 확충, 최신 훈련장비 도입 등 체육인프라 구축과 함께 재능 있는 학생 선수를 발굴해 상위학교로 연계 육성하고, 우수선수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교육사랑신문은 대한민국 '체육입국(體育立國)'의 신화를 이어갈 대전지역 엘리트선수들과 명문 학교팀을 찾아봤다. [편집자 주]

한국 여자농구의 침체기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한국 여자농구는 화려했다. 박찬숙, 정은순, 박현숙, 정선민, 전주원, 변연하, 최윤아 등 걸출한 스타플레이어를 앞세워 아시아와 세계무대에서 강호로 꼽혔다.

한국은 아시아선수권(현 아시아컵)에서 1965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12회나 정상에 올랐다. 대회 최다 우승국의 영광은 17년 전 홈에서 열린 2007년 인천대회 우승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올림픽 무대에서도 1984년 LA대회 은메달, 2000년 시드니대회 4강 등 간판 구기 종목의 자부심을 뽐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올림픽 8강을 끝으로 더 이상 한국 여자농구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인기도 관심도 유망주도 점점 줄어들고 있는 한국 여자농구의 삼중고 속에서도 묵묵히 선수 발굴과 육성, 여자농구 홍보에 열정을 쏟는 학교가 있다.

바로 대전월평중학교다.

월평중학교는 대전지역 초·중·고교 전체에서 딱 3곳 뿐인 엘리트 여자농구부를 운영하는 학교다. 나머지는 갑천초등학교와 대전여자상업고등학교 뿐이다.

때문에 월평중 여자농구부는 존재만으로도 귀하고 감사할 일이다. 여학생 학교운동부 육성과 상급학교 연계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허리 역할을 하는데다 진로진학에 가장 고민이 많은 사춘기 학생 선수들에게 인생의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 같은 위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 국내 중·고등학교 가운데 농구부 최소 로스터 12명을 온전히 채운 학교가 거의 없을 정도다. 2024년 현재 중학교는 20팀 192명(팀당 9.6명), 고등학교는 16팀 134명(팀당 8.375명)에 불과하다. 학령인구 감소까지 맞물리면서 선수단 확보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전월평중학교는 올해 14명 로스터를 채웠다. 대전교육청의 아낌없는 지원 아래 박소영 코치와 오명석 코치가 발로 뛰며 선수를 찾아내고, 영입해 온 노력의 결실이다.

월평중 농구부는 갑천초등학교에서 올라온 선수도 있지만 사회인 스포츠클럽에서 영입한 선수들이 꽤 많다. 지난해 유소년클럽대회에서 눈 여겨 봤던 현암초, 비래초, 신계초 등 여러 학교에서 5명을 영입했다.

온갖 인맥을 모두 동원해서 찾아낸 원석들은 어느새 팀의 기둥으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특히 외삼중학교에서 스카우트한 3학년 이수림 선수(파워포워드·센터)는 1년 만에 기량이 급성장하면서 팀의 에이스가 됐고, 2학년 서연희 선수(가드)는 은어송초등학교 시절 대전교육감배 생활체육대회에 출전한 게 감독·코치진의 눈에 띄어 발탁됐다.

또 2학년 김다예 선수(포워드)는 유일하게 연계학교인 갑천초등학교 출신이며 구력도 제일 오래됐다. 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해서 기본기가 제일 탄탄하다.

세 선수 모두 프로 농구선수가 되겠다는 목표와 함께 장래의 태극마크를 꿈꾸고 있다.

박소영 코치는 “핵심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무조건 키가 큰 선수들을 스카우트했다. 농구를 처음부터 배우지만 기본기만 충분히 익히면 성장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로스터를 채운 만큼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고 있다. 자체 경기에 뛸 인원도 많고,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졌다. 팀 분위기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열악한 유소년 여자농구의 현실은 학생과 학부모에게 운동을 권하는 것부터 녹록치 않다.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줄면서 엘리트체육 인재풀 자체가 부족하고, 인기 종목으로 쏠림이 두드러진 가운데 농구는 애매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농구는 큰 키와 윙스팬(wingspan.양팔 너비), 점프력, 순발력 등 선천적인 피지컬과 운동 센스가 중요한 종목이다. 오죽하면 “농구는 심장이 아니라 심장의 높이로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때문에 그런 재능을 가진 어린 선수를 발굴하는 것은 오롯이 지도자의 몫이다.

박소영 코치는 “공을 차지하기 위해 몸싸움이 빈번한 농구는 큰 키와 긴 윙스팬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압박, 스틸, 블록 등 수비 측면은 물론 공격에서도 높은 타점, 낮은 드리블 등이 모두 피지컬이 받쳐줘야 가능하기 때문에 재능있는 선수를 만나는 것부터 힘들다. 다른 지역 학교에서 월평중학교가 12명 로스터 기준을 넘겼다고 소문이 나서 많이 부러워하는데 사실 10명이 신입생이라는 게 문제다.(웃음) 완전 신생팀이나 다름없다. 때문에 차근차근 팀을 만들어나갈 생각이다. 당장의 성적보다는 학생들에게 농구의 재미를 알려주고, 한 계단씩 목표 순위를 올리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월평중학교 농구부는 유독 ‘전통’을 강조한다. 그렇게 역사가 오래됐느냐는 의문이 들지만 이면에는 아픈 기억이 있다. 여자농구부를 운영하던 중앙여자중학교가 지난 2012년 구도심 공동화로 폐교된 이후 새로 창단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과 지도자 모두 중앙여중 농구부의 역사와 DNA를 이어받았다고 생각하고, 강호 재건의 목표를 다짐한다.

오명석 코치는 “중앙여중 농구부는 국가대표 포인트가드로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주역이자 실업팀 국민은행을 농구대잔치 여자부 우승을 이끌었던 박현숙 선수(농구대잔치 통산 최다 어시스트 보유자)와 최윤아 신한은행 감독 등 국내 넘버원 가드를 비롯해 국가대표 센터였던 장선형 수원대 감독을 배출했다. 박소영 코치도 중앙여중 출신이다. 프로에서 은퇴한 뒤 월평중학교에서 지도자를 하는 것도 학교 이름은 다르지만 대전에 하나 뿐인 여중 농구부에 대한 남다를 애정이 있고, 대전 여자농구를 재건하겠다는 의지가 크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월평중 농구부는 요즘 제54회 전국소년체육대회와 6월에 열리는 2025한국중고농구 주말리그 출전 준비에 여념이 없다.

1학년이 태반인 팀이어서 슛폼과 기본기 연습이 대부분이고, 농구 규칙부터 설명하고, 포지션 별 위치 잡는 법부터 배우고 있지만 마음만은 대회 우승이 목표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주말리그의 경우 지난해 중부권 지역예선을 통과해 왕중왕전까지 진출하는 성과를 거뒀다.

오명석 코치는 “현실적으로 이기는 농구는 어렵지만 선수들이 대회 출전을 통해 농구의 재미를 느낄수 있고, 한 걸음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부족해도 경험이 쌓이고 팀플레이에 눈을 뜨게 되면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쯤에는 분명히 달라진 모습이 될 것이다. 그게 농구의 매력이다”라고 말했다.

대회를 앞둔 선수들의 각오도 다부지다.

"(이수림 학생) 안녕하세요 3학년 주장 이수림입니다. 제가 농구를 시작한 이유는 호기심을 가지고 스포츠클럽에 들러갔는데 흥미를 느껴 엘리트에 오게 되었습니다. 저의 롤모델은 김단비 선수입니다. 김단비 선수는 슛도 좋고 드리블도 좋습니다. 김단비 선수처럼 성장하고 싶습니다."

"(서연희 학생) 저는 포인트가드를 맡고있는 2학년 서연희입니다. 농구를 시작하게된 계기는 스포츠클럽으로 농구를 접해경기를 뛰다보니 포인트가드의 포지션으로서 농구의 스킬적으로 재미를 느껴 농구를 더 해보고자 박소영 코치님을 찾아 엘리트농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꿈은 프로농구선수이고, 롤모델은 허예은 선수입니다. 허예은 선수는 찬스가 나면 센스있게 패스를 해서 많은 어시스트를 따는게 너무 멋있는 것같습니다. 허예은 선수처럼 되기 위해 경기영상도 많이보고, 열심히 운동을 하겠습니다!"

"(김다예 학생) 안녕하세요. 저는 2학년 김다예입니다. 갑천초등학교 때부터 운동을 하게 되었는데 언니들이 운동을 하는 모습이 멋있어 보여서 월평중에 와서 운동하게 되었습니다. 제 롤모델은 강이슬 선수입니다. 강이슬 선수의 슛이 좋아서 그 모습을 본받고 싶습니다.”

"(김소윤 학생) 저는 월평중 농구부 1학년 김소윤입니다. 제가 농구를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는 <리바운드>라는 영화를 보고 농구의 흥미를 느꼈습니다. 영화속에서 팀원들과 함께 나아가는 점을 보고 저도 그렇게 농구를 해보고 싶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농구선수 송윤하 선수를 롤모델로 삼고 있습니다. 송윤하 선수는 팀을 위해 묵묵히 자기역할을 해내는 선수이고, 특히 수비와 리바운드, 스크린 같은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본받고 싶습니다."

대전 여자농구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코치진의 노력은 파이팅 넘치는 선수들의 다짐과 함께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대전월평중 여자농구부의 올 시즌은 매 경기마다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디딤돌이 될 전망이다.

▷"이 기사는 대전광역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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