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스포츠 선수들은 대부분 정부 주도의 엘리트체육을 통해 양성된다. 누구나 좋아하지만 따라하기 힘든 고난도 기술은 아마추어나 생활체육에서는 탄생하기 어렵다. 엘리트체육은 확실한 성과를 내는 시스템이면서도 인기 종목에 비해 관심이 덜해 지원이 적은 비주류 스포츠까지 육성하는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 비인기 종목에서도 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선수를 키워내는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문제는 타이밍이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어도 어린 시절부터 집중적인 훈련과 경험을 통해 성장치를 최대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다. 올해 제54회 전국소년체육대회와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에 역대 최고 성적에 도전하는 대전시교육청이 어린 학생선수 발굴과 육성에 매진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대전교육청은 학생 훈련 전용시설 확충, 최신 훈련장비 도입 등 체육인프라 구축과 함께 재능 있는 학생 선수를 발굴해 상위학교로 연계 육성하고, 우수선수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교육사랑신문은 대한민국 '체육입국(體育立國)'의 신화를 이어갈 대전지역 엘리트선수들과 명문 학교팀을 찾아봤다. [편집자 주]
"레슬링 진짜 무섭다. 무서워", "레슬링은 절대 못 이겨"
2년 전 비영어권 TV 부문 시청 시간 1위를 차지한 넷플릭스 '피지컬 100'에서 터져 나온 말이다. 레슬링 국가대표 장은실 선수가 특전사 출신 여자출연자를 압도적으로 이기고, 전직 국가대표였던 20년 경력의 레슬러 남경진이 190㎝, 112㎏의 거구인 교도관을 손쉽게 제압하면서 레슬링에 대한 감탄사가 쏟아졌다.
'피지컬 100'은 말 그대로 최강 피지컬(physical)을 자부하는 100인이 최후의 1인을 가리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이종격투기와 복싱, 씨름, 스켈레톤 등 힘 좀 쓴다는 스포츠 종목은 물론 군인, 교도관, 산악구조요원 등 체력과 정신력으로 똘똘 뭉친 100인이 출연했다.
그중에서도 레슬링을 기반으로 한 참가자들은 독보적인 매력을 뽐냈다. 단순하게 육체의 힘만을 겨루는 대결이라면 레슬링이야말로 '천하무적'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레슬링에 대한 경외감은 고대부터 지금까지 한결같다. 오죽하면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체육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춤이고 하나는 레슬링입니다. 우리는 교사들에게 레슬링 기술을 모두 기꺼이 가르치라고, 그리고 학생들에게는 이것을 고맙게 받아들이도록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때문에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은 물론 근대 올림픽 제1회 대회부터 정식 종목으로 이름을 올린 유서 깊은 스포츠다.
‘레슬링’은 한국 스포츠 역사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종목이다. 개발도상국 시절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 메달밭 역할을 하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해방 이후 국제대회 최초의 금메달(장창선·1966년 미국 톨레도 세계선수권대회)과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양정모·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이 모두 레슬링에서 나왔다. 이후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레슬링 강호로 수십 년을 호령했고, 매트 위에서 펼치는 불굴의 투지는 한국인의 DNA를 고스란히 보여주며 감동의 드라마를 썼다.

하지만 국제대회의 화려한 성적과 달리 레슬링은 한국에서 비인기종목이다. 화려하지 않고, 고된 훈련 탓도 있지만 아마추어 스포츠가 갖는 한계 때문이다. 그래서 예능 프로그램에서 레슬링이 보여준 임팩트는 태극마크를 꿈꾸는 수많은 레슬링 선수들에게 훌륭한 동기부여가 됐다.

대전에서도 40년 동안 묵묵히 대한민국 레슬링의 요람을 자처하며 선수들을 키우는 학교가 있다. 바로 대전보문중학교다.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현 국가대표 감독인 문의제 선수를 배출한 학교로 더 유명하다.
레슬링은 상·하체를 모두 사용하는 자유형과 상체만을 사용하는 그레코로만형으로 나뉜다. 보문중학교는 자유형에 특화된 학교다. 지난 2023년 제52회 소년체전에서 금메달 2개를 모두 자유형에서 따냈고, 문화체육부장관기와 삼성생명배 등을 석권하며 30여년 만에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또 지난해 제53회 소년체전에서도 자유형 금·은·동메달을 휩쓸며 당시 3학년이던 박지민 선수(보문고1)가 한 해 동안 5개 대회에서 5관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빼어난 성적은 고강현(국가대표 후보), 길시원(청소년대표), 곽유건(꿈나무 대표) 등이 연령별 대표팀에 선발되는 쾌거로 이어졌고, 대전시교육청이 선정하는 대전지역 운동부 우수학교로 선정되며 레슬링 강호의 부활을 알렸다.

레슬링은 맨몸으로 상대를 내던지거나, 쓰러뜨리거나, 눌러서 제압하는 그래플링 계통의 격투기다. 우선 유리한 위치를 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상대의 어깨가 땅에 2초 이상 닿은 상태인 폴(Fall)을 얻어내 이기거나, 각종 기술을 이용해 점수를 따내 승리할 수 있다.
레슬링의 기본은 상대방을 넘어뜨려서 제압하는 것이다. 비슷한 스포츠로 유도나 주짓수가 있지만 아무래도 도복을 입고 하는 경기라 레슬링만큼 순수한 체력을 겨루는 스포츠는 아니다. 레슬링은 몸 대 몸으로 하는 원초적인 스포츠이기 때문에 공정하고, 과정과 결과 모두 아름답다.

사실 보문중학교가 자유형 종목에 특화된 것은 선수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학령인구 감소와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과 집중인 셈이다.
선수 선발의 어려움 속에서도 보문중학교는 상급학교인 보문고등학교로 이어지는 허리역할을 튼튼하게 해내고 있다. 선수를 뽑기 위해 1학년 신입생들의 체육활동을 눈 여겨 보며 가능성이 있는 학생에게 적극적인 구애작전(?)을 하는가 하면 스포츠클럽이나 생활체육 동호회까지 쫒아 다니며 재능 있는 학생 선수들을 모집하는 열정을 쏟았기에 가능했다.
감독·코치진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비인기 스포츠 활성화와 중·고교 연계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낸 셈이다.
국가대표 출신인 이우주 코치는 "모든 중학교는 학교스포츠클럽이라는 수업을 운영하는데 지역 학교를 연계해 레슬링을 할 만한 학생들을 수소문한다. 관심을 보이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연합훈련을 하면서 정식 입단으로 연계하는 시스템이다"라며 "초등학생의 경우는 생활체육대회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눈여겨 보는데 올해 뽑은 김연수학생은 대한레슬링협회 꿈나무선발전에서 가능성을 보여서 뽑은 사례다. 특히 올해 보문고등학교에 진학한 5관왕 박지민 선수는 대전지역 체육교사들의 모임이자 장학재단인 대전운사모에서 선발해 더욱 각별한 선수다. 운사모 장학생은 펜싱의 오상욱 선수에 이어 두 번째다"라고 말했다.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스승들의 열정은 학생 선수들에게도 자발적인 훈련의지로 이어졌다.
요즘 중학교 운동부에서 새벽훈련을 하는 곳이 드문 게 현실이지만 보문중 레슬링부 학생선수들은 너 나 없이 6시 30분이면 체육관에 모여 근력을 키우며 구슬땀을 흘린다. 90분동안 이어지는 강도 높은 훈련에도 누구 하나 얼굴을 찌푸리지 않는다.
새벽운동이 끝나면 착실하게 일과 수업을 마치고, 오후 3시부터 본 훈련에 돌입한다. 무려 5시간 동안 기술훈련을 받으며 테크닉을 연마한다. 매트 위를 흥건하게 적시는 땀은 학생 선수들이 꿈꾸는 태극마크로 가는 보증수표인 셈이다.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체육관 시설도 보문중학교의 성적 향상의 한 축이다.
하루를 꼬박 훈련에 매진하는 학생선수들과 감독·코치진이 한 목소리로 최고라고 말하는 보문중 레슬링장은 3년 전만해도 가건물이었다.
김의태 감독은 "대전교육청의 지원으로 완비된 레슬링 훈련장은 우리 운동부의 자랑이다. 샤워장과 헬스장까지 갖춘 덕분에 선수들이 안전하고 체계적으로 연습에 매진할 수 있게 됐고, 덕분에 눈에 띄게 기량을 키울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어린 선수들을 선발해 보문고등학교까지 이어지는 국가대표급으로 육성하는 감독·코치들의 헌신, 학교와 대전교육청의 아낌없는 시설 지원이라는 두 바퀴가 최근 비약적으로 성적을 끌어올린 보문중 레슬링부의 핵심 동력이다.

이제 남은 건 학생선수들의 당찬 포부다. 겨우내 흘린 땀방울이 올해 열리는 제54회 전국소년체전과 제53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기, 제3회 삼성생명배, 제19회 종합선수권대회, 제35회 회장기 전국중학교레슬링대회 등 메이저대회에서 중등부 최강의 실력을 뽐낸다는 각오다.
"(김연수 학생·1학년·꿈나무대표) 초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의 추천으로 레슬링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그냥 재미로 했는데 시합을 하면서 기쁨을 알게됐고, 점점 더 진지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빠른 스텝과 유연성이 장점입니다. 상대가 예상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기술을 쓰는 것이 제 스타일이고,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도 장점입니다. 작년에 꿈나무대표로 선발됐는데 기술이나 체력만 완벽한 선수보다 마음가짐이 강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지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그런 모습으로 응원받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국가대표가 돼서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 나가고 싶습니다."
"(곽유건·3학년·꿈나무대표) 레슬링부 주장을 맡고 있는 곽유건입니다. 저희는 보문중학교 레슬링 부활을 목표로 하루도 빠짐없이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선배들이 이루지 못했던 목표를 위해 열심히 훈련하고 있습니다. 새벽 체력훈련이 가장 힘든데 서로 격려하면서 잘 버티고 있습니다. 힘들어도 감독님과 코치님들이 더 힘든 만큼 값진 결과가 나온다는 말씀을 하셔서 그 마음을 갖고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제54회 소년체전에서 꼭 금메달을 따겠습니다. 파이팅!"
"(김원범·3학년) 레슬링부 3학년 김원범입니다. 중학교 1학년때 체육선생님의 추천으로 레슬링을 처음 접했습니다.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는데 시합에서 이기고, 메달을 따는 기쁨을 알게 되면서 더 열심히 하게됐습니다. (기억에 남는 시합은) 작년 소년체전 결승전입니다. 아쉽게 졌지만 그 때 느꼈던 긴장감과 아쉬움은 저를 더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그 경기를 자주 떠올리며 훈련을 합니다. 올해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에 제 목표입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국가대표가 돼서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습니다."
"(박지민·보문고1·작년 5관왕) 보문고 1학년 박지민입니다. 뜻깊은 운사모 장학금을 받아서 정말 영광입니다. 고등학교에 올라오자마자 무지 큰 응원을 받은 느낌입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뿐입니다. 일단 고교에 진학하니 훈련강도가 훠씬 세 졌습니다. 몸으로 느껴집니다. 기술적으로 완성도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정신적으로 더 집중해야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레슬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교 첫 시즌에서 꼭 메달을 따고, 궁극적으로는 청소년 국가대표가 돼서 국제무대에서 뛰고 싶습니다. 항상 옆에서 도와주시는 부모님, 지도해주시는 코치님들, 그리고 운사모 지도자 선배님께 감사드립니다. 박지민이라는 이름이 오래 기억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 기사는 대전광역시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