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가 'PITCH CLOCK'을 미룬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피치 클락(피치 타이머)은 투수가 잘 보이는 곳에 디지털 시계를 설치하고, 초시계에 따라 제한시간 내 투구를 할 수 있게 한 야구 규칙이다.
ABS에 피치 클락까지 한꺼번에 시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것은 다 시기가 있다. 점진적으로 해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급진적으로 하다간 혼란이 생기고, 큰 부작용을 유발하게 된다.
1980년대 국내 모 프로구단에서 MLB 시스템을 받아들이려고 하다가 성적은 커녕 혼란에 빠진 경험이 있다. 오프시즌에 자율적으로 몸을 만들어 오라고 휴식 기간을 주고 2월 초에 선수들을 소집했다.
당시엔 헬스클럽에도 자체 웨이트 트레이닝 시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당연히 선수들은 맹탕 놀다가 2월 초에 올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어떤 상황이 벌어졌겠는가?
100년 넘은 MLB의 이상론에 함몰된 경우이다. 당시 8년 된 한국프로야구의 현실을 무시하고 뱁새가 황새를 따르려다가 가랑이가 찢어진 경우였다.
지금은 사라진 MBC청룡은 1986년 비시즌에 여의도 유도장을 빌렸다. 오전 시간 동안 유도장 안에서 빙글빙글 도는 러닝과 체조를 했다. 그리고 여의도 고수부지에서 4km 러닝을 했다. 따분하면 축구를 했다.
요즈음은 오프시즌에 해외에 나가서 몸을 만들 수 있지만 당시만해도 금전적으로나 선수들의 의식 자체도 그렇게 할 수준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마음만 먹으면 국내외 어디든지 몸을 만들 수 있고, 억대 연봉을 받는 선수들은 몸을 만들기 위한 투자 여력이 있다. 하지만 1980년대 선수들의 연봉은 높지 않았다. 당연히 자신에게 투자할 여력과 장소가 없었다.
요즈음 어떤가? SSG 추신수 같은 선수는 LA 레슨장에 후배들을 데리고 가서 숙식까지 제공하며 훈련을 시킬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제 일본의 스즈키 이치로 관련 기사가 눈에 띄었다. 이치로는 MLB에 입성할 때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 자신을 위해 일본에서 받은 연봉을 모두 쓴 것이다.
투자 없는 성공은 없다. 투자 없이 성과를 바라는 것은 감나무 밑에서 입만 벌리고 감이 떨어지길 바라는 것과 같다.
다시 한 번, KBO가 'PITCH CLOCK'을 미룬 것은 참 잘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