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생님입니다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선생님입니다
  • 김상희 기자
  • 승인 2023.05.15 20: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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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만 남은 스승의 날, 다음 생엔 교사 안 할래 역대 최고, 교사들도 형식적 기념일 반갑지 않아.

매년 스승의 날이면 쏟아지는 언론 기사 제목이다. 최근에는 학창 시절 겪었던 최악의 스승을 이야기하는 전파와 영상매체, 개인 SNS도 부쩍 늘었다. 20년 전, 30년 전의 폭력 교사, 뇌물 교사 등을 언급하며 교사들을 조롱하고 희롱한다.

교사로서 아무렇지 않은 척, 안 듣고 안 보는 척하고 넘기려 하지만 실상 마음은 그렇지 않다. 5월이 되면 숨이 막힌다. 왜 지난날 교사들이 행했던 과오들을 지금의 교사들이 화풀이 대상이 되어 매년 숨 막히는 스승의 날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가끔은 속상함을 넘어 지금의 현실에 화가 나기도 한다.

교원단체에서 실시하는 설문에 따르면 교직에 대한 만족도는 급격하게 하락하여 매년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2022년 교사노조연맹 설문조사에서 교직에 대한 불만족 응답은 46.8%에 달했다.

학교 현장에서 체감하는 학교의 모습은 더 처참하다. 수업이 안 될 정도로 정서 및 행동 과잉이 심각해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고, 교사의 생활지도는 몬스터 부모들의 무고성 아동학대에 막혀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참고로 몬스터 부모는 자기 자신의 아이만을 위해 학교에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상식에 벗어난 행동을 하는 부모를 지칭한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등재될 정도다.

현재의 교사들은 '돌봄‧방과후‧00정책‧00학교‧00혁신’이란 이름으로 끊임없이 쏟아지는 업무 속에서 정작 교사의 본질 업무인 수업을 위한 시간은 늘 부족하다. 여기에 더해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봉급인상률, 더 내고 덜 받는 연금 개악, 늦어진 연금 개시일로 퇴직을 해도 몇 년간 연금 없이 생활하는 현실 등 흔히 공무원의 가장 큰 장점이라 말하는 미래에 대한 안정성 보장도 사라졌다.

요즘 MZ세대 교사들 사이에서는 ‘교직을 누가 더 빨리 탈출하나, 교직 탈출이 미래 보장’이라는 말이 돌고 있고, 명예 퇴직자 비율이 퇴직자 비율의 절반을 넘는 실정이니 교직은 더 이상 꿈의 직장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을 준비하며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동료 교사들의 열정을 느낄 때면 가슴이 뛴다. 교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서로 수업 자료를 공유하고 교수‧학습 방법을 논의하는 글이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올라온다. 학습으로, 진로로, 교우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에게 줄 조언을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간다. 학생의 예쁜 말 한마디, 잘 이루어졌던 수업 활동 등 오늘 있었던 소소한 교실 에피소드를 나누며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최악의 교직 위기라는 현실 속에서도 선생님들이 힘을 내서 다시 교실에 들어가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그 중심은 바로 학생이다. 일 년 동안 학생들이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 하며 울고, 웃고, 힘들어하고, 감동받는다. 성적이 오르는 것보다 배움의 맛을 아는 학생으로, 친구와 싸우지 않는 것보다 싸운 후 화해하는 방법을 아는 학생으로 성장시키는 맛에 선생님이란 직업에 보람을 느낀다.

소위 문제아라는 학생과의 밀당 중에서도 긍정적 작은 변화에 행복하다. 학년을 마치고 헤어질 땐 저마다의 색으로 빛나는 학생들의 성장에 가슴이 뿌듯하다. 흔히들 교육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한다. 많은 선생님들이 그 교육을 곧 학생으로 보고 오늘도 열심히 선생님으로서 묵묵히 일을 하고 계신다.

우리는 선생님이다. 이렇게 힘든 오늘날 교육 환경 속에서도, 누구도 스승의 날을 축하해주지 않는 비참한 현실 속에서도 수많은 학생들의 스승이고, 스승이 될 나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기고 자축하고 싶다.

이 땅의 모든 스승님께, 오늘도 고군분투 하는 현장의 선생님들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오늘을 축하드린다.

이윤경 대전교사노동조합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