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 충남도청 개청 10주년 특집] 한국 천주교의 알파(A)이자 오메가(Ω), 내포 가야산
[내포 충남도청 개청 10주년 특집] 한국 천주교의 알파(A)이자 오메가(Ω), 내포 가야산
  • 김상희 기자
  • 승인 2023.11.29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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⑪ 세계 가톨릭 성지 내포 가야산, "전래와 박해, 순교의 현장 모두 간직한 곳"

조선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에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이백리를 가다보면 가야산이 있는데 이 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이 바로 내포다"라고 썼다. 이중환이 가리킨 열 고을은 현재의 충남 예산, 덕산, 홍성, 결성, 서산, 해미, 태안, 당진, 면천, 신창(아산) 등이다. 모두 가야산의 사방(四方)에 위치한 고을이고, 충남도청소재지가 예산·홍성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내포신도시'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이유다. 올해 충남도는 내포신도시 개청 10주년이 된다. 지난 10년 동안 충남도는 15개 시·군을 아우르는 행정중심 신도시를 조성하고, 내포문화권의 정체성 확립에 구슬땀을 흘렸다. 다만 아쉬운 것은 내포의 주산(主山)인 가야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관심은 미흡했다. 2023년 내포 충남도청 개청 10주년을 맞아 '내포의 주산(主山), 가야산의 문화관광 발전 및 기능 확장을 위한 제언'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교회 역사에서 알파와 오메가(Alpha and Omega)는 큰 상징을 갖는다.

원래는 처음과 나중을 뜻하는 헬라어 알파벳인데 신약성서에서 '하나님 자신' 또는 그리스도(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의 명칭으로 쓰였다. 즉 창조자이며 완성자를 뜻한다.

한국 천주교 역사에서 공간적인 의미로 처음과 끝인 곳이 있다면 바로 가야산과 내포지방이다. 

충남 내포지역은 이름 그대로 바닷길이 내륙 깊숙하게 드나들면서 천주교 유입과 전파가 가장 활발했다. 조선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를 배출한 곳도 내포이고, 김대건 신부가 사제가 되어 조선 땅을 다시 밟은 곳도 내포다.

내포는 천주교 전파의 중심지였다. '내포의 사도(使徒)' 이존창은 단연 으뜸인물이다. 그가 활동한 1785년 초부터 내포지역의 입교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조선 정부는 그를 사학(邪學)의 교주(敎主) 혹은 괴수로 지목할 정도였다.

1791년 말 이존창이 고향 여사울을 떠나 홍산으로 이주할 당시 그에게 입교한 교인은 300가구가 넘었다. 이들은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할 때까지 자신들이 거주하는 인근의 동리는 물론 내포지방 곳곳과 홍산, 전라도 고산, 경상도 청송과 영양 등에 이르는 천주교 확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내포는 서울과 더불어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다. 1791년 정조 15년에 일어난 조선 최초의 천주교도 박해사건인 신해박해(진산사건) 당시 다산 정약용이 유배된 곳(해미읍)이고, 1801년 신유박해와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에 이르는 동안 해미읍성에서 처형된 천주교도가 수천명에 달했던 순교의 현장이 내포다.

천주교 박해는 무려 100여년 동안 지속됐다. 홍주목과 해미의 충청좌영이 내포의 천주교 신자를 처형하는 거점이 됐다. 박해기간 동안 해미진영에 있는 두 채의 감옥에는 잡혀 온 교우들로 가득했다. 신자들은 교수형, 참수형,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으로 순교했고, 박해를 피해 살아남은 교인들은 해안 지역이나 산간 지역으로 피신했다. 신자 공동체인 교우촌을 이루며 살았는데 서산에는 가야산 일대와 팔봉산을 중심으로 수많은 교우촌이 형성됐다.

가야산 자락의 교우촌이나 차령산맥은 천주교회의 또다른 안식처가 됐다. 박해 후반기에 접어들고 강도가 심해질수록 신자들은 자신의 터전을 버려두고 가야산 등에서 신앙과 일상을 영위했다.

교우촌은 박해 이후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기 동안 한국 천주교가 부활하는 초석이 됐다.

해미읍성 회화나무는 천주교 순교의 아픔을 간직한 나무다. 내포지방의 수많은 천주교 신도들이 이 나무에 철사줄로 머리채가 매달린채 고문 당하고, 순교했다. 철사줄이 박혀있던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내포지역이 한국 천주교의 알파이자 오메가가 된 이유는 지리학적 특징에 있다.

내포는 말 그대로 바닷물이 내륙까지 들어오는 독특한 지형이다. 서해로 돌출된 리아스식 지형이어서 해안선을 따라 남쪽에서 수도 한양으로 오가는 선박들의 경유지로 요긴했다. 육지를 파고든 만과 하천을 따라 깊숙이 밀려드는 조수로 인해 수로를 이용하기도 편리했다.

때문에 해상을 이용한 교역이 활발했고, 선박을 통해 선교사의 출입이나 신자들 간의 이동이 자유로워 천주교 신앙의 급속한 전파와 공동체 관리가 유리했다. 주로 바다와 해로에서 먹고 살았던 주민들에게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종교적 심성이 생활화돼 있었다는 점도 한몫했다.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수록된 조선전도 중 내포지방의 모습
샤를르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에 수록된 조선전도 중 내포지방의 모습

 

◇ 내포 천주교 순례길 등 여러 활용방안 제시…“활성화 위해선 축제·행사는 필수”

현재의 내포는 충남 4대 광역행정기관(도청·의회·교육청·경찰청)이 들어선 행정중심 지역을 말하고 있지만, 수십년 전만해도 충청도 서북부지역 사람들은 스스로를 '내포 사람'이라고 지칭했다. 오늘날의 예산, 홍성, 당진, 서산, 태안과 아산과 보령, 청양의 일부지역이 모두 내포다.

내포지역은 한국에서 유명한 천주교 스팟이다. 지난 수십년간 전국의 천주교 신자들이 끊임없이 순교지와 순례길을 찾고 있다. 천주교 유입과 전파, 순교의 역사를 모두 간직한 곳인 만큼 다양한 종교유산들이 남아있고, 박해 시기 많은 순교자들의 아픔과 숭고한 신앙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가야산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한티고개는 삽교의 용머리 마을 배나드리 마을 둥지에서 집단으로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 군졸들이 압송해 넘던 고개로, 숱한 순교자들이 고개 마루터에서 고향마을을 마지막으로 뒤돌아 보던 곳이었다.

이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당시 고통 속에서 끌려가면서도 목숨으로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 했던 옛 순교자들의 천주교 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으며 마음 속으로 참회하고 기도하며 걷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지난해 8월 26일 예산군이 주최한 <내포 천주교 유산 활용을 위한 연구용역 학술세미나>에서 경기도 시흥시청 이용준 책임관은 '천주교 성지 및 문화유산 활용사업에 대한 고찰' 주제발표에서 "종교영역도 빅데이터 활용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시기가 도래했다. 빅데이터의 활용 영역은 무한하다"며 "천주교 성지와 순례길의 순례자와 여행자들에 대한 기초 통계 등 여러 항목을 조사해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빅데이터가 순례자와 여행자들의 니즈(need)와 원츠(wants)를 분석해 순례길의 동선을 정비하거나 문화유산 활용사업 등 마케팅 전략수립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용준 책임관은 내포 천주교 유산의 주요 활용방안으로 ▲전례의 상시적 거행과(미사 등) 성지에 건립된 박물관 또는 기념관의 전문성 확보 ▲순례지의 성지와 문화유산 중 비지정 문화재의 문화재 지정(등록) 및 다양한 순례길 개발 ▲역사·교육적 접근의 정기적 학술 및 체험프로그램 운영 등을 제시했다.

또 내포문화숲길의 내포천주교 순례길(5개 코스)을 통한 도보 순례에 대리운전이나 승합차를 이용한 교통 편의제공 서비스와 순례자를 위한 숙박시설 운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지에서 다음 성지까지의 하루 여정을 마무리하고, 다음 날 다시 순례를 이어갈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 형태의 숙박시설을 운영하고, 이를 마을기업을 통해 운영한다면 지역내 일자리 창출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용준 책임관은 "내포 천주교의 활성화를 위한 축제나 연중 상설 문화행사가 필요하다"며 "내포가톨릭국제문화제(가칭) 개최를 검토해 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지역의 종교·문화유산이나 기념적인 공간을 활용한 유명 예술축제가 많다. 프랑스의 ’아비뇽 페스티벌‘(매년 7월), 영국의 ’에든버러 밀리터리 타투‘(매연 8월)가 대표적이다. 이들 축제와 공연 장르의 공통점은 역사문화유산을 무대와 행사장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고려한다면, 내포 지역의 성지와 역사 문화재인 솔뫼, 신리, 해미읍성 및 순교성지, 여사울과 문화재로 지정된 예산성당과 합덕성당은 최적의 공연장이요 비엔날레 장소인 셈이다.

한국 천주교의 시작과 끝을 간직한 내포에서 해 볼 만한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순교성지 해질녘 음악회 ▲레퀴엠 연주 시리즈 ▲솔뫼아레나 월드뮤직 콘서트 ▲내포역사문화아카데미 등 지자체의 기획력과 의지만 있다면 성지와 문화유산 콘텐츠를 활용하는 방안은 무궁무진하다.

내포 지역의 천주교 성지와 문화유산은 학술적·역사적 가치와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드문 위대한 가치를 가진 곳이다. 내포 가야산은 그 중심이다. 

마침 최재구 예산군수는 <내포 천주교 유산 활용을 위한 연구용역 학술세미나>에서 "향후 천주교 성지를 개발하고 정비해 종교적 영성과 마음의 치유를 받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공언했다.

가야산은 천주교 콘텐츠의 보고다. 가야산 자락의 예산군과 당진시, 서산시 등 천주교 성지는 전세계 교인들에게 매력적인 순례코스다.

충남도가 내포 개청 10주년을 맞아 가야산의 문화관광 발전과 기능 확장에 나서고 있다. 천주교 성지와 스토리텔링이 가득한 가야산에 어느 시·군이 먼저 걸맞는 문화관광 콘텐츠 계획을 세울지 주목된다.

<에이티엔뉴스 박성민 기자 공동취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