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계산공주?"냐고 묻는 이들에게... "왜 세계는 뮬란이나 신화 속 아마존에 열광하는가?"
"왜 계산공주?"냐고 묻는 이들에게... "왜 세계는 뮬란이나 신화 속 아마존에 열광하는가?"
  • 권성하 기자
  • 승인 2022.07.25 04: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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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랑신문·충청남도청 공동 주요축제 홍보 캠페인] 제68회 백제문화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이도학 교수(융합고고학과), "한류 원조 백제는 문화콘텐츠로 굴기해야"

'제68회 백제문화제'가 오는 10월 1일 충남 공주와 부여에서 열린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3년 만에 열리는 백제문화제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표 역사문화축제다. 올해는 '한류 원조, 백제의 빛과 향'을 주제로 열흘 동안 개최된다.

교육사랑신문은 ㈔매헌윤봉길월진회 대전지회와 함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이도학 교수(융합고고학과)를 찾았다. 이도학 교수가 발굴한 백제 여전사 '계산(桂山)공주'와 백제 역사문화 콘텐츠의 대중화 방안을 듣기 위해서다.

이도학 교수는 "고구려 평강공주와 신라 선화 공주 이야기는 너무 유명합니다. 그런데 왜 백제에는 공주 이야기가 없을까요?"라고 운을 뗀 뒤 "백제 의자왕의 따님이자 여전사였던 계산공주가 존재했지만 한국 역사학계의 무관심으로 잊혀졌다"고 말했다.

이어 "백제를 언급할 때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콘텐츠의 빈곤을 말하기 앞서 설화로 존재하는 계산 공주 이야기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최초의 한류였던 백제가 21세기에 다시 한번 세계적인 역사문화콘텐츠로 성장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도학 교수와 ㈔매헌윤봉길월진회 김상희 대전지회장이 나눈 일문일답이다.

이도학 교수는 지난 2020년 백제 의자왕의 딸이자 비운의 여전사인 계산공주 이야기를 세상에 알렸다. 진취적이며 자주적인 여성상을 통해 21세기 한국MZ세대와 글로벌 한류가 열광할 백제 역사문화콘텐츠이자 캐릭터라는 설명이다. [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 지난 4월 국립부여박물관이 주최한 학술심포지엄 '백제의 치석과 결구'에서 계산공주와 백제 역사문화콘텐츠의 대중화 방안을 제언하셨습니다. 계산공주는 어떤 인물인가요?

"계산공주는 백제말 의자왕의 딸입니다. <삼국유사>와 <동경잡기>에 나오는 백제 공주 설화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시절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준(村山智順)이 '계산(桂山)'이라는 공주 이야기를 채록한 기록이 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계산공주는 무예를 배우고, 까치로 변신해 적의 최전방을 탐지하는 여전사였습니다. 직접 무기를 재발해 전장에서 전투를 주도했고, 나라의 파국을 막기 위해 아버지 의자왕에게 평화를 주장했던 인물입니다."

- 백제 역사문화콘텐츠로서 '계산공주'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상의 변화입니다. 21세기 글로벌 문화의 중심에는 여성 주인공이 많습니다. 요즘 MZ세대들이 환호하는 여성 연예인은 대부분 '걸크러쉬'입니다. 백제와 나당연합군의 결전을 앞두고 미녀 공주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모습은 너무나 멋진 스토리입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을 외쳤던 조선시대와는 딴판인 것입니다. 무예를 배우고, 나라를 위해 전쟁터로 향하고, 까치로 변신하는 모습과 망국을 막지 못하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비운의 공주라는 기승전결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신라와의 거듭된 전쟁을 하는 아버지 의자왕에게 신라와의 화친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은 '세계 평화'라는 글로벌 코드와도 맞아 떨어집니다."

- 그동안 백제 계산공주 설화가 우리나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너무나 고증을 추구하는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설화 정도로 치부하고, 문학계에서는 존재를 몰랐던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유사>와 <동경잡기>에 단편적으로 산재한 이야기를 일제시대 무라야마 지준이 채록해 조선총독부에 보고한 자료가 있었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겁니다. 지난번 부여박물관 주최 학술세미나에서도 교수들도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일본 학자들은 관점이 달랐습니다. 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가 쓴 <신라화랑의 연구(1974)>만 해도 백제전설에 의자왕의 왕녀인 계산이라는 미인이 검법을 닦어 선술에 통하고 신병(神兵)으로 신라군과 싸우지만 김유신에 의해 선술이 부서졌다는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어요. 미시나 쇼에이는 계산공주 설화를 전쟁에 대한 고대적 관념을 말하고 있기 때문에 문화자료적 가치를 갖고 있고, '화랑'과도 통한다고 썼습니다. 삼국시대 전쟁사 전반에 걸쳐 여성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접근 자체를 하지 않고 있는 한국 연사문화학계에서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애니메이션과 영화로 제작된 디즈니의 '뮬란'은 남북조시대 작자 미상의 화목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아버지를 대신해 전장에 나선 여전사의 이미지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 분명 계산공주는 기존의 한국 여성상과는 달라 보입니다. 일반적이지 않은 캐릭터입니다. 색다른 백제 콘텐츠로서 어떤 활용성이 있을까요?

"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전혀 이상할게 없습니다. 백제 의자왕 시기의 국제 질서는 여왕들의 전성기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신라는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이 잇따라 통치했고, 왜에는 사이메이(齊明) 여왕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당나라는 측천무후(則天武后) 실권을 쥐고 있었지요. 세계사 속에서도 여성이 전쟁에 나간 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런던의 탬즈강변에 동상이 세워진 켈트족 여왕 부디카(Boudica)는 로마군과 싸웠고, 2500년전 스키타이 여전사들은 중무장하고 싸웠다는 것을 입증하는 고분이 발굴됐습니다. 계산공주 이야기는 여전히 한국사회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관념으로는 이해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여성이 자신이 의지로 운명을 개척하고, 삶의 주체가 되는 이야기를 통해 한국 고대 여성들의 역동적인 삶을 제대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전문학을 하거나 드라마 등 콘텐츠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좀더 관심있게 봐주기를 바랍니다. 디즈니가 제작한 애니메이션과 영화 '뮬란(Mulan)'을 생각해 보세요. 중국남북조시대 작자 미상의 화목란 이야기가 바탕이지만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습니다. 아버지 대신 군대에 들어가서 활약했다는 단순한 이야기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이자 캐릭터가 됐습니다. 계산공주 이야기는 이보다 더 큰 상품성이 있습니다. 미녀 공주가 남해에 사는 신녀에게 무술을 배우고, '자용(自勇)병기'라는 천하무적의 무기를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 이야기 입니다. 까치로 변신해 나당연합군 총사령관 소정방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결국은 김유신의 신검에 정체가 들켜 다시 미녀로 돌아오면서 백제 패망을 막지 못하지만 '새드엔딩' 자체로도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뮬란'처럼 2차 콘텐츠인 영화나 게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3차 콘텐츠로 각종 캐릭터 상품과 관광상품으로 활용한다면 청소년들에게는 꿈과 재미를, 충청인에게는 백제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 계산공주 설화가 지닌 '평화'의 키워드도 글로벌 콘텐츠로 성장하는데 강점으로 보입니다. 공주와 여전사, 망국과 평화라는 이질성에서 드라마틱한 장면이 떠오릅니다.

"사실 백제와 나당연합군이 결전은 동아시아의 운명을 건 세계대전이었습니다. 당시 백제를 구하려고 한 나라는 일본이 유일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산공주 설화에서 뽑아내는 '평화'의 키워드는 가까운 일본과 관계 개선에도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21세기 한일관계는 오래전부터 이어온 원한이 아니라 20세기 악연(일제강점)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겁니다. 작고한 우에다 마사아키(上田正昭) 교토대 명예교수는 일왕은 백제인의 후손이고, 일본의 건국신화는 단군신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고대 백제인을 통해 일본이 왕권이 퍼졌다는 왕조이동설까지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속일본기>에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적혀있고, 아키히토 전 일왕이 인정하기도 했습니다. 계산공주가 아버지 의자왕과 대립하면서 굽히지 않았던 '평화' 정신을 백제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유일하게 재건하려고 노력했던 사이메이(齊明) 여왕과 연계하면 한중일을 잇는 동북아시아 평화코드로 키워낼 수 있습니다."

영국 탬즈강변에 세워진 켈트족 여왕 부디카 동상. 이도학 교수 제공 [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영국 탬즈강변에 세워진 켈트족 여왕 부디카 동상. 이도학 교수 제공 [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 적지 않은 역사서들이 백제를 동아시아 강국으로 기록하고 있는데도 한국 대중들이 이해하는 백제의 모습은 '망한 나라'의 이미지가 강합니다. 68회째를 맞는 백제문화제는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요?

"안타깝게도 한국의 역사 교육이 망국의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국사교과서와 역사부도는 5세기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영토가 금방이라도 백제를 삼킬 듯이 그려 있고, 6세기 신라 진흥왕이 북상해 한강유역을 석권하고 백제를 위축시킨 모양새입니다. 반면 백제는 4세기대에 중국 요서지역 등에 진출한 것처럼 화살표를 그려 놓았을 뿐 교과서 어디에도 요서경략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없습니다. 백제가 주제인 지도라면 동남아시아지역까지 교류한 국제국가의 모습을 그려 넣어야 합니다. 이런 점은 충청권 학계와 정치인들이 함께 바로잡아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가 삼국 가운데 가장 강력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백제가 최강이었어요. 국력의 척도인 인구와 경제력을 보면 삼국시대 말기 고구려가 69만 7000호인데 백제는 76만호였습니다. 조선시대 이조판서를 지낸 이승소는 '삼국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하고 사나웠다(强悍)'고 주장했고(1478년), 인조는 정경세와의 경연 도중 '삼한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했다'고 언급한 기록(1623년)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옵니다. 또 실학자 정약용도 삼한 가운데 백제가 최강이라고 주장합니다. 백제가 약소국으로 전락한 건 일제시대부터입니다. 왜가 한반도 남부를 호령했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위해 백제를 역사적으로 종속시켜야 했던 겁니다. 하지만 백제 무령왕이 중국 양나라에 보낸 국서에서 여러 차례 고구려를 격파하고 다시 강국이 됐다(累破句麗更爲强國)고 선언할 만큼 동아시아의 강국이었습니다. 때문에 68회째를 맞는 백제문화제는 전세계가 환호하는 한류처럼 문화콘텐츠를 통해 백제를 알려야 합니다. 이번 백제문화제가 '한류 원조, 백제'를 타이틀로 한 만큼 이름이 밝혀진 백제의 유일한 공주인 '계산공주'를 적극 홍보하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 충남도와 공주시, 부여군 등 백제문화제를 준비하는 자치단체가 참고할 만한 역사문화콘텐츠 활용 사례가 있나요?

"전라남도 영암의 왕인박사 축제나 곡성의 심청축제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왜국에 천자문과 논어를 전파한 왕인은 근초고왕 때 인물입니다. 당시 백제는 전남까지 영역을 넓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영암에는 왕인박사 사당과 기념관이 세워져 성역화되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은 황해도 황주군 도화마을 출신입니다. 그런데도 곡성군에서 축제를 진행합니다. 잘 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역사나 설화 속의 단초를 지역과 연계하는 적극성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역사문화콘텐츠를 발굴하고 확장한 성공 사례로는 소설가 현진건이 1938년 동아일보에 연재했던 '무영탑 전설'을 꼽을 수 있습니다. 불국사 다보탑과 석가탑을 세우는 공사에 나선 석공 아사달과 아사녀 부부의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이후 극작가 함세덕이 5막 7장의 역사극으로 재탄생시켰고, 영화나 노래 등 많은 여러 콘텐츠로 확장됐습니다. 재미난 점은 소설 '무영탑'의 원형인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아사달도 아사녀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두 주인공은 부부가 아니라 남매로 소개돼 있어요. 그럼에도 '무영탑'은 문화콘텐츠로서 크게 성공한 사례로 평가됩니다. 소설과 극으로 창극불교 설화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했고, 두차례나 영화로 제작됐기 때문입니다."

- 계산공주 설화는 '백제에는 왜 공주 이야기가 없는가'에 대한 확실한 해답이 될 것 같습니다. '한류 원조, 백제의 빛과 향'을 주제로 하는 백제문화제에서 계산공주가 어떻게 문화콘텐츠로 활용될지 기대됩니다. 앞으로 남은 과제는 뭔가요?

"지난 지방선거에서 김태흠 충남도지사의 슬로건이 '힘쎈 충남'이었습니다. 백제인의 DNA가 뿌리내린 충남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고, 그만큼 훌륭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취문성뢰(聚蚊成雷)라고 모기가 천 마리면 천둥소리를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백제에 대한 우리 역사학계의 카르텔은 바뀌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충남도의 행정력이 필요합니다. 계산공주를 발굴하는 일은 학자로서의 서비스일 뿐입니다. 계산공주를 키워내는 것은 충남도의 역할입니다. 뮤지컬이나 영화, 애니메이션 등 공연물로 제작하고, 21세기에 걸맞는 진취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백제에만 덧씌워진 '망국'의 이미지를 걷어 내야 합니다. 고구려도 망했고, 신라도 망했습니다. 한류 원조 백제는 문화콘텐츠로 일어서야 합니다. 왜 세계가 뮬란이나 아마존에 열광할까요? 계산공주라는 여전사 캐릭터를 충남도가 적극 세일즈해야 합니다."

이도학 교수와 ㈔매헌윤봉길월진회 김상희 대전지회장이 계산공주를 통한 백제 역사문화콘텐츠 대중화 방안에 대한 문답을 주고 받고 았다. [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본 기사는 충남지역 주요축제를 홍보하는 캠페인으로 충남도청의 지원으로 제작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