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작업실] : : ② 따뜻한 자유주의자 김선태 화가
[화가의 작업실] : : ② 따뜻한 자유주의자 김선태 화가
  • 교육사랑신문
  • 승인 2018.06.2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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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도복희가 바라본 화가의 작업실

 

시인과 화가가 만나면 어떨까? 영혼의 울림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이들의 만남. 지역 시인인 도복희 시인이 만나는 화가의 작업실은 그렇게 기획됐다. 앞으로 도복희 시인은 매달 지역 화가들의 작업실을 찾아 화가들의 예술혼을 조명하고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두 번째 글과 영상은 따뜻한 자유주의자 김선태 화가이다. [편집자 주]

 시인에게는 백지의 공포가 있다. 시 한 줄을 끌어내기 위해 끝없이 내면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한시도 놓치지 않아야 시는 어느 순간 얼굴을 들이민다. 깨어 있지 않으면 차갑게 돌아서버리는 시를 바라보느라 시인은 그 안에 스스로를 가둔다. 자발적 은둔은 그들이 선택한 호흡의 방법일지 모른다.

김선태 화가는 작업실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림이 그려지는 그 순간을 위해 화가 역시 스스로를 유폐시키고 있었다. 어느 순간, 몰입의 그 순간, 그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화폭 안에 그 긴 기다림을 쏟아 부을 것이다. 그의 작업실 한 쪽에는 이미 오랜 기다림으로 화가의 손끝을 빠져 나온 그림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절절한 기다림은 화폭마다 다른 얼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그의 작품들은 보는 이에 따라 다른 세상을 이야기 해 줄 것이다.

그림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게 만드는 화가, 나는 그의 작업실을 바람 부는 어느 봄날 방문할 수 있었다. 충남 금산 구만리에 화가의 작업실이 있다. 안영터널을 빠져나와 바로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산으로 둘러싸인 지역이 보인다. 꽤 넓은 하천을 따라 몇 채의 집이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작업실 주변에 수백 개 바람개비가 바람을 불러 모으고, 소피와 마루라고 부르는 순한 개 두 마리가 화가와 함께 하는 집. 두 마리 개는 낯선 이의 방문에도 짖지 않았다. 넓은 마당에는 이제 막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나무들로 가득 했다. 산수유는 가장 먼저 노랗게 봄을 알린다. 작업실 왼쪽 암벽 사이사이, 등 굽은 소나무에서 짙은 솔향이 바람을 타고 마당을 흘러 다녔다. 바람 소리가 떠다니는 곳은 적막하다. 화가는 그 적막 한가운데 자발적으로 들어와 그림과 동거하고 있었다.

김선태 화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프랑스 파리 8대학원에서 조형예술학을, 파리국립미술대학에서 회화과를 졸업한 후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펼쳐나가는 인재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20여 년간 전업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해오다 자신의 고향인 대전으로 내려와 작업에 몰두 하고 있다. 수많은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그의 작품 세계를 꾸준히 발표해 왔다. 2016년에는 이동훈 미술상을 수상했고 2017년 현재 서울 갤리리 CHOI에서 구만리(九萬里)라는 타이틀로 전시중이다.

‘언제부터인가 버리려한다, 더 가까워지려는 욕망, 집착 그리고 거짓말, 나는 가끔 떠나려 한다’ 동서를 오가며 비워내기와 버리기를 반복한 작가의 세계가 현재 그의 작업 방식에 그대로 드러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고 떠나는’ 반복적 작업은 자신을 구속하고 있던 강박으로부터 벗어나는 통로였을 것이다. 정형화된 자아를 해체하고 자신의 몸을 채우고 있던 것들을 비워내는 것, 이러한 과정에서의 긴장과 불안은 온전히 화가가 감당해야할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문을 열고 나온 그에게 세상은 그만큼 자유로워졌을 것이다. 자유로워진 그가 보고 만진 이미지들은 거침없는 어느 몰두의 순간을 거쳐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느 곳에도 얽매이고 싶지 않는 작가는 주제도 버리고 제목도 버린다. 재료마저도 자유롭고 싶어 한다. 어느 경계도 원치 않는 그의 작업은 스스로의 기다림에 응답하는 내면의 색과 형태로 강렬하게 다가선다.

세상에 나를 앞세우지 않고도 나를 찾아가는 작가의 뒷모습은 높고 쓸쓸해 보였다. 그의 높고 쓸쓸한 세계가 지상에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기를 바란다. 그가 발견해 낸 또 하나의 우주가 화폭 안에 어떤 식으로 담겨질지 작업실을 나오면서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글_도복희 시인 / 영상_모둠티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