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피는 게 두려운' 한국 대학의 민낯...고광률 연작소설 '대학 1, 2' 출간
'벚꽃 피는 게 두려운' 한국 대학의 민낯...고광률 연작소설 '대학 1, 2' 출간
  • 권성하 기자
  • 승인 2023.12.01 00: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한만 있고 책무는 사라진 상아탑, 예견된 붕괴를 향한 풍자적 리얼리즘

한국의 대학은 벼랑 끝에 서 있다. 벚꽃 피는 순서로 서울에서 먼 곳부터 망할 것이라는 저주는 가임여성 1명당 0.778명이라는 합계출산율과 함께 현실이 됐다.

대학의 적나라한 실상을 담은 소설이 나왔다. 3년 전 철밥통 교수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장편 '시일야방성대학'으로 상아탑(象牙塔)의 위기를 경고한 고광률 작가의 연작소설 '대학 1,2'(도서출판 바람꽃·각권 1만6천원)다.

소설은 특유의 풍자적 리얼리즘과 해학적 비판을 담론 형식으로 담아내며 수능과 지방대 살리기에 나선 정부의 '글로컬대(大)' 선정과 맞물려 묘한 고민을 던진다.

'대학'은 중편 4편, 단편 6편으로 묶였다.

작가의 전작인 '시일야방성대학'이 통사라면 이번엔 열전이다. 역사서에 빗대면 인물별‧사건별 서술 방식인 기전체를 택했다.

몇 편은 고광률 작가가 일찌감치 '조광조, 너 그럴 줄 알았지'(2004년 발표한 중편)에서 그려낸 적이 있는 담론소설이다. 

각 편이 모두 학교법인 중일학원 중석대학교가 무대인데 개별 소설로서 완성된 작품이면서도 서로 유기적 상관성을 지니고 있다. 전체로 보면 잘 짜여진 영화 세트장 안을 들여다 보는 느낌이다.

소설을 관류하는 메시지는 '많이 배웠다는 자들이 교언영색으로 진리를 잡도리 질하고, 곡학아세로 권력에 아부하고, 조삼모사로 자기 이익을 찾는 기술이 놀랍다'는 작가의 말로 축약된다.

소설 속 교수사회의 실체는 참으로 요지경이고, 난마처럼 얽혀있다.

◆작가의 역설(逆說), 소설은 소설로 읽혀야 한다?

고광률 작가는 "소설은 소설로 읽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길 수록 오늘날 대학의 실상과 다르지 않음에 실소가 터진다.

한때 언론‧은행과 함께 절대 무너지지 않을 철옹성으로 불렸던 대학들의 생존위기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 온 탓이다.

인구 소멸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되지만 실상은 사학 권력자들이 대학이라는 '우물 안'에서 부조리하게 내부 카르텔을 구축해 왔고, 우리 사회 최고의 신분과 지위가 보장된 교수들은 연구자의 책무를 방기(放棄)한 채 권리와 이득 만을 취하며 안주해온 탓이 더 크다.

과거 캠퍼스의 낭만은 현재 존망의 낭패감으로 바뀌었다.

◆연구·교수·봉사는 헛구호…부조리 그 자체

소설 속에서 단연 눈길을 끄는 작품은 표제작인 단편 '대학 1'의 '허틀러 행장기'와 중편 '대학 2'의 '잃어버린 정의를 찾아서'다.

허틀러는 우여곡절 끝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된 전직 주류 중앙일간지 기자 출신이다. 뛰어난 로비 역량으로 실용문예창작학과 신설 인가를 받아냈고, 이 학과에서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하면서 허삼락이라는 본명 대신 히틀러의 재림 격(格)인 허틀러로 불린다.

'벌건 대낮에 경량 칸막이가 벽인 연구실에서 순식간에 '뒤치기'를 당했다는 것인데…동물의 왕국도 아니고, 상아탑에서….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더랍니다. 묵시적 동의 없이는 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지요.'(1권 216쪽)

허틀러의 교통사고 사망 전 행적을 '개인비서이자 집사'인 주인공 박박(강의전담교수)이 구술하는 것이 영락없이 '행장기'다. 

'연구·교수·봉사'가 교수의 3대 역할이자 사명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허틀러, 그러나 사생활과 공적 활동은 이중적이다 못해 엽기적이다.

박박의 고모까지 엮인 기구한 스토리는 박박의 고모가 대학원생이 된 사연, 허틀러에 꼬임에 넘어가 줄 수 밖에 없었던 비하인드, 허틀러의 사고사에 얽힌 고모와의 관계 등이 서서히 밝혀지며 '대학 1' 전체의 반전 드라마를 완성한다.

'대학 2'의 중편 '잃어버린 정의를 찾아서'는 사익을 정의로 둔갑시킨 교수들의 표리부동을 꼬집었다.

사실과 정의를 밝힌다는 미명 아래 벌어지는 소송 교원들의 이기적 행태와 이에 맞선 법인 경영자의 대처가 코미디다.

경영자의 눈을 가리는 아첨꾼들인 '십상시(十常侍)'의 신묘한 농단은 또 하나의 개그콘서트다.

일선에서 한 발 물러난 금기태 명예 이사장은 부동산업과 금융대부업(사채)을 수익 사업으로 겸하는 노회한 경영주다. 절대복종을 신봉하는 군인정신을 '이데아요 절대 이성이요 물자체요 궁극의 절대가치'라고 떠받들면서 서정시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그의 모순(矛盾)은 결국 사달을 일으킨다.

교수들을 상대로 지적 감수성과 풍류를 과시하고, 아첨꾼 교수들은 작은 권한을 하사받아 아랫사람들에게 안하무인의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뽐낸다.

결국 성과연봉제 도입으로 비롯된 불씨가 호봉제로 임용한 소송 교수들의 금전적 이해 관계로 옮겨 붙으면서 아수라장으로 막을 내린다.

◆그 많은 한국 사회 부조리 속에서 왜 '대학'인가?

고광률 작가는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했고, 국문학으로 석사‧문예창작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단편 '어둠의 끝'(1987)과 '통증'(1991)이 작가의 첫걸음이다. 소설집으로 '어떤 복수', '복만이의 화물차'가 있고, 장편소설 '오래된 뿔 1, 2', '뻐꾸기, 날다' '성자(聖者)의 전성시대'를 냈다.

작가는 사회 전반에서 부적절하고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언론이나 정치, 종교의 부조리를 주로 고발해왔다.

그럼에도 왜 대학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 명쾌하다.

"나는 학생과 교직원으로서 '작은 대학'들의 세계를 43년 동안 유심히 깊게 들여다봤다. 그 작은 대학들의 작동원리와 작동 과정 속에서의 진실과 정의, 도덕과 양심의 실체를 말하고 싶어 10여년 동안 이 소설들을 썼다. 앞으로 우리네 대학의 이와 같은 호우지절과 사양기(斜陽期)는 다시 겪을 수 없는지라, 미래 쓰임새를 생각해 꼭 기록해 두고 싶었다."

책 말미에 담긴 '작가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