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 학생부교과에 정성평가 도입 왜?..."이유는 고교학점제"
수시 학생부교과에 정성평가 도입 왜?..."이유는 고교학점제"
  • 권성하 기자
  • 승인 2023.04.10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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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절반이 A등급, 변별력 낮아 대학들 인재 선발 방법 고심
2028학년도 대입 수험생들은 고교학점제 영향 이해해야

최근 대학입시 트랜드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이 수시 학생부교과전형에 정성평가가 도입되고 있다는 점이다.

수능 성적으로 대학을 진학하는 정시 전형과 함께 고등학교 내신만으로 승부를 보는 대표적인 정량평가인 수시 학생부교과에 정성평가가 도입되는 이유는 '고교학점제'가 지목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는 제도다. 학생이 스스로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해 이수하면서 다양한 학습 기회를 보장받고, 학생 성장 중심의 교육을 실현하는 것이 목표다.

현재 고등학교는 2015개정교육과정에 따라 교과목을 '공통과목'과 '선택과목'으로 구분해 운영하는데 주로 1학년 때 공통과목을 통해 기초 소양을 함양한 후 2, 3학년 때 학생 각자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과목 선택을 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고교학점제의 평가 방식이다. 고교학점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 모든 선택과목에 성취평가제가 적용된다. 기존의 석차등급은 산출되지 않는다.

성취평가제란 경쟁위주의 상대평가가 아니라 학생 개개인이 학교 자체적으로 정한 평가의 충족기준만 넘기면 학생의 비율에 상관없이 모두 A등급을 받을 수 있는 평가 형태다.

김진환 전 성균관대 입학상담관은 "고교학점제가 본격 시행되면 1학년 때 주로 배우는 공통과목에 대해서만 석차등급을 매기게 된다"며 "현재 체육∙예술 교과 및 진로선택과목에만 성취평가제를 적용하고 나머지 주요 과목에는 등급을 제공하는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는 2028학년도 신입생을 뽑는 대학의 입장에서는 고교학점제에 대응하는 인재선발 방식을 고민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진학사 조사 결과, 절반 이상이 진로선택 과목별 성취도 A등급

교과목의 상당수가 석차등급 없이 성취도로만 산출되면 어떻게 될까? 대입 전문가들은 수시 학생부교과전형에서 큰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수시 학생부교과전형은 고등학교 내신 등급을 기본으로 한 정량평가다. 상당수 과목에서 등급이 아닌 성취도만 제시된다면 학생을 뽑는 대학의 입장에서 변별력을 얻기 힘들다.

실제로 입시전문업체인 진학사가 현재 성취평가제를 적용하고 있는 진로선택과목에 대해 학생들의 성취도 분포비율을 분석한 결과, 과목별로 A를 받는 학생들의 비율이 평균 53.4%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로선택과목 안에서도 소위 주요 교과라 할 수 있는 기초교과(국어, 수학, 영어)와 탐구교과(사회, 과학)로만 한정해도 50%에 가까운 학생들이 성취도 A를 취득했다.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우연철 소장은 "조사 결과, 진로선택과목의 성취도를 정량평가에 반영하는 것이 큰 의미가 없다는 해석이 나왔다"며 "석차등급 4등급의 누적비율이 40%라는 점에서 볼 때 학생부교과전형에 지원하는 상당수의 수험생이 진로선택과목에서 성취도 A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진학사 조사에서는 특히 많은 대학들이 활용하는 '진로선택과목 3과목 반영(국/수/영/탐 중)' 기준으로 볼 때 4등급 내 학생들의 80% 가까이가 3과목 이상 성취도 A를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대학에 지원하면 진로선택과목에서는 만점을 적용 받게 된다는 의미다.

특히 1등급대 학생들의 경우 A를 받은 과목이 3개 이상인 비율이 91.9%에 달했고, 모든 과목의 성취도가 A인 학생도 86.9%로 조사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제대로 된 인재를 선발해야 하는 대학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지방의 모 국립대 입학처 관계자는 "고교학점제에서는 선택과목의 성취도가 A, B, C, D, E로 평가되기 때문에 현재 A, B, C의 3단계로만 평가되는 진로선택과목과 동일한 잣대로 비교하긴 어렵다"면서도 "현재의 고교학점제 시스템에서는 상대평가가 아닌 상황에서 학생들의 성취도가 상향 평가될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하고, 그만큼 인재선발에서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 대안은 교과전형에 정성평가 도입?

변별력 고민을 안고 있는 고교학점제를 맞아 대학들의 준비는 어떨까?

일단 고교학점제를 적용 받는 학생들이 대입을 치르는 시기는 2028학년도다. 당장 올해 입시에 반영되는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대학들은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분위기다. 이미 많은 대학들이 수년 전부터 성취평가제 도입에 따른 학교생활기록부 산출방법에 대한 연구를 진행중이다.

최근 학생부교과전형에 '정성평가'를 도입하는 대학들이 늘어난 것도 대응전략의 하나로 풀이된다.

고려대와 동국대가 2022학년도에 이미 교과전형에 서류평가를 반영했고, 2023학년도에는 건국대가 서류평가를, 경희대가 교과종합평가를 도입하는 등 교과전형에 정성평가를 도입하는 대학이 부쩍 늘고 있다.

성균관대는 교과전형을 교과100%로 운영하지만 진로선택과목 및 전문교과과목에 대해서는 정성평가를 진행한다. 여기에 올해 경북대와 부산대가 교과전형에 정성평가를 반영한다.

대학들이 진로선택과목 성취도의 변별력이 없다는 판단에 따라 고교학점제 전면 실시 이후 확대되는 성취평가제 과목에 대한 평가를 사전에 대비하는 모양새다.

진학사 우연철 소장은 "지금도 고3 과정에서 등급 산출 과목이 적어 교과성적 정량평가에서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다. 대학들은 학생들의 1학년 성적보다 2, 3학년 때의 학업역량을 더 중시하기 마련인데 현재 3학년 성적으로는 학업역량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며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이 문제가 더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대학들이 정성평가 반영을 대안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