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단지 운이 좋았을 뿐, 저는 잠정적 아동학대 교사입니다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단지 운이 좋았을 뿐, 저는 잠정적 아동학대 교사입니다
  • 김상희 기자
  • 승인 2023.03.13 13:4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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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대전교사노조 정책실장(대전배울초 교사)
사진=MBC PD수첩 캡쳐
사진=MBC PD수첩 캡쳐

한때는 스스로 '참교사'라고 생각하고, 자부하며 살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선생님이 최고라며 잘 따라 주었고, 별다른 민원 없이 한 해 한 해 잘 지냈기에 제가 잘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3월 7일 방영된 <PD수첩>을 본 후 저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 '참교사'는커녕 그동안 고발당하지 않은 게 용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PD수첩> '나는 어떻게 아동학대 교사가 되었나' 편에서는 아동학대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했던 일선 교사들의 상황을 방영했습니다. '국어 교과서에 나온 장면을 가르친 후, 아픈 학생에게 까치발로 걷도록 시킨 것이 아동 학대로 간주되어 고소 당한 선생님'과 '빨간 카드를 들고 있는 호랑이 캐릭터 옆에 주의를 받은 학생의 이름을 붙이고, 방과 후 교실 청소를 시켜 담임 교체와 고소를 당한 선생님', 심지어 '아동학대 신고를 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선생님' 등이 보도됐습니다. 아직 못 보셨다면 '유튜브 다시 보기'에서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보는 내내 저는 침이 바짝바짝 말랐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지도하라는 것인지 굉장히 혼란스럽고 답답했습니다. 전국의 모든 선생님과 시청자분들도 적잖이 놀라셨을 것 같습니다. 이번 방송은 기존(2%대)에 비해 높은 3%대의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유트브 다시보기도 69만회(전반부, 3월 12일 기준)로 기존 회차에 비해 2배 내지 많게는 10배 가까운 누적 기록을 보이고 있습니다.

방송 후 교사 커뮤니티에는 '암담한 심경을 호소하는 글', '아동학대범으로 몰릴까 너무 두렵다는 글', '아동학대로 고소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 지 문의하는 글'이 연일 올라와 최고 조회수를 기록 중입니다.

심지어 맘까페에서도 이번 방송에 대해 '억울하시겠다. 선생님을 응원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방송 후 저희 대전교사노동조합을 포함해 각 지역 및 전국 단위별 교사노조에 가입한 조합원이 5일 만에 500명을 훌쩍 넘길 정도입니다.

이렇게 뜨거운 반응과 두려움, 탄식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요?

첫번째는 열심히 지도하고, 노력하는 분들이 오히려 아동학대범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심정적 사실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합니다.

생활지도를 위한 훈육과 상담, 반성문 쓰기, 보상 제도는 거의 모든 교실에서 이뤄지고 있는 보편적인 지도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저 역시 방송에 나온 선생님들과 비슷한 방식으로 17년째 생활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말로써 칭찬하고, 주의를 주기도 하지만 제한된 시간과 공간 안에서 20여명의 학생을 아우르며 수업을 하려면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생활 지도 방법을 고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성문 역시 쓰게 합니다. 차분히 앉아 글을 쓰면서 자신의 행동을 복기하고, 잘못한 점은 용서를 구하며 억울했던 점은 이야기하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데 반성문 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싶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상 제도를 만들고, 안내하고, 한 해 동안 일관성을 가지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것', '반성문을 쓰도록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고 교사가 주의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은 웬만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는 할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그만큼 애정이 있고 학생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빨간 호랑이 캐릭터를 사용해 학생에게 주의를 주신 선생님 역시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을 본받아 교사가 되었다', '선생님이 엄마 같았다'는 오랜 제자들의 이야기 속 주인공인 최윤경(가명) 선생님도 같은 학부모로부터 총 6건의 아동학대 혐의를 받고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의지가 되었던 선생님이 어떻게 한순간에 아동학대 교사로 고소를 당하게 됐는지 보는 내내 안타깝고, 숨통이 조여 왔습니다.

두번째는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소를 당했을 때 이를 중재하고, 심도 있게 들여다 볼 시스템이 부재해 결국 혼자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현실입니다.

학부모에게 민원을 받으면 해결해야 하는 사람은 온전히 담당 교사의 몫입니다. 아동학대로 고소되면 중재 과정 없이 바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습니다. 또 관리자는 아동학대 인지 즉시 신고를 해야 하는 법 때문에 사건의 경중과 학대의 유무를 따져보기도 전에 학교가 선생님을 고발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민원의 시작과 동시에 거의 확정적 아동학대범인 상태에서 교사 혼자 입증해 나가야하는 현실 속에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최소 2~3년이 걸리는 힘겨운 시간을 버텨 아동학대가 아니라는 결론이 났다 해도 과연 교직생활을 온전히 이어갈 수 있을까요? 얼마나 더 많은 선생님이 아동학대범으로 몰리고, 상처받고, 목숨을 잃어야 대책을 마련할까요?

상황이 이지경이 될 때까지 교육청과 교육부는 뭘 하고 있었던 것인지, 얼마나 더 교권이 추락하고 교실이 붕괴돼야 제도를 정비하고 시스템을 구축할 지 참으로 답답하고, 암울합니다.

<PD수첩>이 방영되기 전에 이미 비슷한 사건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내가 아니길 바랐고, 아직 아니어서 다행이었을 뿐, 두려운 마음은 늘 가슴 한 켠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현실과 일련의 과정 속에 제가 다짐한 것이 있는데 그건 바로 '적당히 가르치고, 적당히 사랑하자'입니다. 사명감과 소명의식은 어디 갔느냐고 꾸중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나의 '열심'이 '아동학대의 증거'가 돼 버릴 수 있다는 사실과 학생에 대한 나의 '애정'이 나에게 '독'이 될 수도 있겠다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저 혼자만의 다짐일까요?

열심히 가르치지 않겠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동 학대를 하는 교사를 두둔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의 인권과 수업권이 중요한 만큼 교사의 인권과 교육 활동권도 중요합니다. 교사가 아동학대로 고발을 당했을 때 이를 제대로 조사하고, 중재할 제도 마련이 시급합니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동학대 신고나 악성 민원을 교사 개인이 감당하지 않도록 하고, 학교 실정에 맞게 '아동학대 처벌법'과 '아동복지법'이 하루빨리 개정돼야 합니다. 그래야 교실이 바로서고, 제대로 된 교육이 이뤄지고, 다른 학생들의 인권과 수업권도 보장할 수 있습니다.

끝으로 억울하게 아동학대 교사로 고발 당해 고통을 받고 계신 선생님들께 감히 힘 내시라는 말씀 드립니다. 또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나신 부산의 고 김은정(가명) 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한동안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꽤 무거울 것 같습니다.

박소영 대전교사노조 정책실장(대전배울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