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고교 선생님들께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고교 선생님들께 위로와 응원의 마음을 전합니다"
  • 김상희 기자
  • 승인 2022.12.13 11:50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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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선생님이 드리는 편지..."이주호 교육부장관의 말에 상처입지 말기를"

수능을 위한 수업이나 대입을 위한 입시원서 작성을 해 본 적 없지만 "수시(수시전형)가 역풍을 맞은 이유는 교사 때문이고 그동안 교사가 변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는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말(12월11일자 연합뉴스 인터뷰)은 꽤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초등교사인 저도 이렇게 억울한 데 현장에서 학생들의 진학을 위해 노력하고 계신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마음은 어떠하실지 차마 위로도 못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입시에서 수시전형이 도입 된 것은 1997학년도 제7차 교육과정부터입니다. 그 전까지의 대입 제도는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을 줄 세우기해서 대학에 입학을 시키는, 누가 봐도 획일적이며 타당하지 않은 제도였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미국의 입시 제도를 본 따 만든 것이지요.

취지는 좋습니다. 하지만 수시전형의 역사가 쌓이면서 수시의 선발 기준이 다양해졌고 대학마다 요구하는 조건이 세분화 되면서 학생들은 자신의 적성을 파악하기보다는 가고자하는 대학의 입맛에 맞는 자신의 재능을 발굴하게 되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부는 점점 학생부 위주의 수시전형을 늘려갔는데 비슷비슷한 경험 속에 괄목할 만한 '한 줄'을 써넣기 위해 학생들은 경쟁하듯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게 되었지요. 수년간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이 그 ‘한 줄’을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을 생각하니 이렇게 '한 줄'로 수시의 문제점을 정리해버린 것이 매우 미안합니다.

수능이 어떻게 될지 몰라 내신과 수능 그리고 학생부까지 관리하느라 고생하는 학생들을 선생님들은 손 놓고 있었을까요? 대입제도가 매년 달라지고 대학의 요구가 점점 까다로와질 때 선생님들은 수십 년 전 그 모습 그대로였던 걸까요?

단연코 그렇지 않습니다. 어떻게 바뀌는지 제일 먼저 파고 들어야하는 사람은 선생님이고, 방향에 맞게 학교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수업 방법을 고안하고 평가 방법을 맞춰나갈 수 밖에 없는 것도 현장의 선생님입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했으니 제도의 좋고 나쁨을 떠나 정착이 되고 유지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에 티가 나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사실 학교는 학원이 아니라 광고도 마음대로 못 합니다. 최근 도입된 고교학점제로 혼란스러운 현장을 정돈하고 맞춰나가고자 애쓰시는 분들도 현장의 중고등학교 선생님입니다.

또 하나,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수시의 공정성 논란을 이야기 하면서 AI 튜터가 수업하고 평가하면 객관성이 보장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평가에 대한 신뢰성이 깨진 이유는 평가가 객관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교사의 평가에 대한 권위가 추락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그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가겠지만 선생님들께서 평가할 때 가장 우려하시는 부분은 바로 '자녀의 평가에 대한 학부모의 항의'입니다. 학부모의 항의에 교사의 객관성을 담보해줄 만한 장치가 없다는 것에도 방점을 두어야 합니다. AI가 도입된다고 해서 학부모의 항의가 줄어들 것 같지 않습니다.

저는 수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생활기록부를 작성하고 있는 초등교사이지만 학생부를 작성할 때 가끔은 내가 글짓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고쳐야할 점이 많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 학생에 대한 평가를 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가끔 드라마 대장금의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했는데 왜 홍시라 하시면...?"이라는 대사가 곱씹어 질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개선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AI를 도입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대책이 될 것입니다.

이주호 장관의 말씀 중에 또 하나의 상처는 이것입니다. "교사들이 일이 너무 많다", "진도를 나가야해서 바쁘다"는 핑계를 대니 수업 진도는 AI에게 맡기고 선생님은 멘토 코치 역할을 하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이 '교사들은 변화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가르친다. 이렇게 기계적으로 가르칠 바에는 AI에게 맡기고 선생님들은 옆에서 칭찬이나 해줘라'라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제가 꼬인 것이라면 다행입니다.

하지만 명심하십시오. 우리는 단 한 번도 소통 없이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수업이 아닙니다. 눈빛을 주고받고, 보이지 않는 감정을 교류하며 그 상황과 분위기에 가장 알맞은 말과 태도를 골라 가르쳤습니다. 물론 부족했을 때도 있고, 소통의 오류를 겪었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마저 노하우를 쌓는 과정이라 생각했고, 고민했습니다.

감히 여쭙습니다. 혹시 이주호 장관님께서 본인이 경험한 학창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학교 현장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계신 것 아니십니까?

또한 "교사는 무풍지대였다"라는 말에도 절대 동의 할 수 없습니다. 만에 하나 그 말이 '휘몰아치는 대입제도 속에서 꿋꿋이 버티고 서서 학생들을 가르쳤다는 뜻'이라면 동의합니다. 선생님들까지 우왕좌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태풍 속에서도 뚝심으로 학생을 일으켜세우는 사람, 그게 바로 선생님입니다. 그리고 그 한 복판에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그 점을 교육부의 장관이신 분은 절대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쉽게 선생님들의 노력을 절하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실패한 점을 가장 만만한 선생님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간곡한 부탁입니다.

끝으로 저의 동료이자 제 아이, 저희반 학생들의 선생님이 되실 분들께 전합니다. 오늘도 질풍노도의 시기를 걷고 있는 학생들을 가르치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수십 명이 넘는 학생들 한명 한명의 학생부에, 고르고 골라 가장 적합한 말을 찾아 써주고 계시는 전국의 고등학교 선생님들께 감히 위로와 응원의 마음 전합니다.

제가 가르쳤던 꼬맹이들을 어엿한 사람으로 다듬고 다듬어 일선 대학교와 일터에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박소영 대전교사노조 정책실장(대전배울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