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만5세 초등 입학' 정책에 대한 단상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만5세 초등 입학' 정책에 대한 단상
  • 권성하 기자
  • 승인 2022.08.04 18: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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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아이와 우리 반 학생의 오늘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부가 최근 내놓은 '만5세 초등학교 입학' 이슈가 뜨겁다. 학부모단체와 교원단체의 반발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한다는 입장이어서 주목된다. 대전교사노조도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집무실 앞에서 반대 집회를 열고, 정책 철회를 촉구했다. [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만5세 초등입학' 이슈에 대한 여론이 굉장히 뜨겁습니다. 뜨거울 수밖에요. 어떤 정책이든 이를 개선하거나 세울 때에는 충분한 숙의와 논의 과정이 필요한 법인데 과정은 없고 결론만 있으니 당연합니다.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래된 말이지요. 스라밸(공부와 삶의 균형·Study-Life balance)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이 역시 공부와 삶이 균형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는 워라하(일과 삶의 조화·Work-Life Hormony), 스라하(공부와 삶의 조화·Study-Life Hormony) 라는 단어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찌됐건 조화로운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압축해서 표현하는 단어입니다.

왜 이런 용어들이 오랜 시간 강조되고 되새겨지며 호응을 얻고 있는 걸까요? 일과 돈, 공부 경쟁에 치중하다가 정말 중요한 ‘행복’을 놓치는 경우가 허다하니 삶을 놓치지 말고 살아가자는 일종의 사회적 지침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른들의 삶만 그런 걸까요? 우리 아이들은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보장해주고 있나요? 

윤석렬 대통령은 만5세 초등 입학 정책의 근거로 첫째, 영·유아 단계에서 국가의 책임 대상을 확대하고, 둘째, 출발선상의 교육격차를 해소하며, 셋째, 졸업시점을 앞당겨 사회에 조기 진출을 하게 한다는 취지라고 밝혔습니다.

이 정책에는 정말 많은 문제점이 있지만 제가 생각한 가장 큰 문제점은 정책 안에 '아이의 삶이 없다'’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몇 가지 여쭙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서 최대한 아이의 입장 또는 인생 선배 입장이 되어 대답해주셨으면 합니다.
 
첫 번째 근거에 대한 질문입니다. 맞벌이 핵가족 시대에 아이 맡길 곳이 없어 동동 거리는 가정을 위해 영유아동을 일찍부터 국가가 책임지고 돌보겠다는 것은 좋은 취지 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좋은 취지가 좋은 결과를 보장 하는 것은 아니지요.

기관에서 여러 명의 친구들과 돌봄을 받는 것이 좋을 까요? 일찍 퇴근하신 부모님 품에서 형제, 자매들과 돌보아지는 것이 좋을까요? 좁고 불편하지만 온전한 내 공간이 좋을까요? 시설은 크고 좋지만 마음 편히 눕지도 못하는 돌봄 교실이 좋을까요? 열과 성을 다하는 선생님과 돌봄전담사의 손길이 좋을까요? 피곤해서 자주 쓰다듬어 주시지는 못하지만 나를 바라봐주시는 부모님의 애정어린 눈빛이 좋을까요? 과연 만5세 어린이들은 어떤 상황에서 더 행복할까요? 

어른은 어떤가요? 크고 좋은 회사, 훌륭한 사장님보다 좁은 내방, 복작복작한 내 가족과 함께 일 때 몸도 맘도 훨씬 편합니다. 거기에 삶의 밸런스가 있는 것이지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부모님이 또는 아이의 보호자가 일찍 집에 갈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개편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 경제적으로 더 타당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정책 속에 아이의 삶이 있습니다. 왜 이에 대한 논의는 없는 것이죠?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영유아동에 대한 기관의 돌봄은 최단 이자 최소한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 근거에 대한 질문입니다. 만5세에 입학하면 출발선상의 교육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거 타당합니까?

현행 유아교육의 누리교육과정은 아동의 발달단계를 고려해 놀이를 통해 배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교부터는 한글책임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기초학력 지원 등 ‘교육’에 중점을 두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자, 질문하겠습니다.

'만5세 아동의 입장'에서 놀면서 배울 때 행복할까요? 책상에 각 잡고 앉아 한글 공부할 때 더 행복할까요? 놀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느낄까요? 조막만한 손가락을 굽혔다 펴며 되지도 않는 덧셈뺄셈을 할 때 많은 것을 배울까요? 교육격차가 해소될까요? 사교육을 등에 업은 선행학습이 부흥할까요? 
 
마지막 근거에 대해 질문합니다. 졸업시점을 앞당겨 사회에 조기 진출하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조기 진출하면 훌륭한 산업 인력이 되어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고 본인의 삶에 만족하게 되는 거 맞습니까?

지금도 자신의 진로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20대,30대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자신에 대한 이해와 삶의 방향에 대한 고찰의 과정 없이 너무 빨리 경제 현장에 내던져 졌기 때문이지요.

조기진출을 하도록 부추길 것이 아니라 초중고 시절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학생들이 한 텀 쉬어가며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미래에 대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인생 선배 입장에서 대답해주시기 바랍니다. 사회 생활 일찍 하면 삶이 행복하고 조화로워지는 거 맞습니까? 어른들이 쉽게 다룰 수 있고 만만한 노동 일꾼들이 더 많이 생기는 거 아니고요? 그럼 최소한, 일찍 돈 벌면 돈을 많이 벌 수 있기는 한 겁니까?

교육과 돌봄, 교육 소외계층 보호, 사회 조기 진출과 관련한 정책은 당사자인 아이들의 삶과 조화를 이룰 때 또 최소한의 행복이 보장되고 추구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아이들도 어른들과 같이 밸런스가 맞춰진 삶을 원합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다보면 이번 만5세 입학정책은 아이들의 균형적인 발달과 조화로운 삶에 합당하지 않음을 우린 알 수 있습니다.

방학을 핑계 삼아 마음껏 뒹굴 거리고 있는 우리 집 아이와 각자의 집에서 여유를 즐기고 있을 우리 반 학생들의 행복한 삶이 교육정책의 테두리 안에서 보장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균형과 경제적 효용성보다 ‘우리 아이들의 행복과 조화로운 삶’이 제일 우선시 되고 보장되는 정책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봅니다.

갑자기 튀어나온 만 5세 초등 입학 정책이 하루 빨리 철회되길, 이 모든 것이 해프닝으로 마무리 되길 다시한번 바랍니다.

[박소영 대전교사노조 정책실장·대전배울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