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학생 한명을 키워내기 위한 학교의 온 손길을 맞춰나갈 때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학생 한명을 키워내기 위한 학교의 온 손길을 맞춰나갈 때
  • 권성하 기자
  • 승인 2021.11.23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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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은 마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옆집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는 요즘 마을보다 학교 현장에 더 적절한 속담이다. 그럼 학교 현장에 맞게 속담을 변형해볼까?

'한 학생을 가르치는데 학교의 온 손길이 필요하다.'

우리가 학생을 가르친다고 했을 때 떠올리는 사람은 담임선생님 또는 교과선생님이다. 하지만 학교에는 학생을 위해 다양한 분야의 선생님이 함께 하고 계신다. 예를 들면 학생들의 점심을 책임져주시는 영양교사, 다쳤을 때 보살펴주시는 보건교사 그리고 상담교사와 사서교사 등 각 계 전문적인 분야에서 학생들을 위해 함께 교육하고 계신다.

이 분들 뿐이겠는가? 교육 활동 이외의 역할을 분담하는 행정직원, 코로나 감염병으로 새로 생긴 방역지원인력, 등하굣길의 안전을 책임지는 꿈나무 지킴이 등 학생들이 등교해서 하교할 때 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하 교직원)의 손길을 거쳐 학생 한명 한명을 키워나가고 있는 곳이 바로 학교다.

이렇게 다양한 각 계, 각 분야에서 사명감과 전문성을 갖고 소임을 다 할때 학교는 돌아가고 학생은 자라날 수 있다.

최근 손과 발을 맞춰 일해 온 교직원들, 특히 교원과 행정직원 사이에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분쟁과 갈등들이 고름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지난 11월 18일 전국공무원 노동조합 교육청 본부는 교원의 교육활동 업무를 행정실로 이관하지 말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의 내용은 경기도 교육청이 교원들의 교육 필수 업무를 일방적으로 이관하려 하고 있고, 이관 하려는 교원업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수학습과 직접 연관되어 있으니 행정실로 이관은 불가능 하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는 경기 뿐만 아니라 각 시·도광역시에서도 곪아 터져 나오고 있는 문제다.

그렇다면 성명서에서 말하는 교육활동은 무엇이고 교원과 학교 행정직원의 역할은 무엇일까?

초중등교육법 제20조 4항에 따르면 '교사는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고 돼 있고, 5항에는 '행정직원 등 직원은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학교의 행정사무와 그 밖의 사무를 담당한다'고 명명돼 있다.

그리고 교육활동이란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식이나 기술 등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 '교육은 개인이나 집단이 가진 지식, 기술, 기능, 가치관 등을 대상자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다'라고 정의돼 있다.(출처 위키백과)

법과 사전의 정의에 따라 지식이나 기술을 가르치는 활동은 교원이, 행정사무와 그 밖의 사무는 행정직원이 담당해야 한다. 하지만 전국공무원노조 교육청본부가 성명서에서 본인들의 업무가 아니라고 제시한 업무는 사업계획 수립 및 품의, 강사 채용, 각종 위원회 사무 등인데 과연 이 업무를 학생들을 가르치고 배우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명명백백하게 업무 분장이 정해져 있음에도 그동안 학교에서는 힘의 원리로, 행정편의상의 이유로, 학교장 재량이라는 만능키로 일개의 교원에게 교육활동 이외의 업무들을 떠넘겼고, 관행처럼 굳어져 왔으며 일개 교원이 감당해야하는 몫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그 피해는 교육활동의 질 저하로 귀결됐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고 교사도 교사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든든한 교사노조가 생겼다. 더 이상 법과 정의에 어긋나는 관행은 없어져야 할 것이며 각자의 사명감과 전문성에 걸맞은 역할을 성실히 받아들이고 제 역할에 충실하게 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업무과다로 인한 어려움은 행정직원만의 문제가 아니며 함께 일한 동료로서도 잘 알고 있는 바다. 하지만 만일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 바쁘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한글 교육을 행정 직원에게 떠안긴다면 어느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오히려 교사들이 들고 일어날 일이다. 그리고 업무과다와 업무분담 문제을 혼재해서 문제의 본질을 흐려서도 안 된다.

이러한 불협화음을 진작 알고 있었음에도 묵인해 온 교육청과 교육부는 이제라도 손발 걷고 앞장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반복해 온 '업무분장은 학교장 재량이어서 도리가 없다'는 만능키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 그리고 올바른 해결책도 아니다.

한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학교의 온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그 손길들이 화합 할 때 비로소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모두 동의 할 것이다. 필자는 고름처럼 터져 나온 문제들이 오히려 반갑다. 곪아 들어가지 않고 터져준 것에 감사하다.

학교의 모든 교직원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재정비하고 소명과 사명감을 일깨울 때다. 이제 각 계, 각 층에서 이기심이 아닌 지혜를 발휘하여 학생 한명 한명을 키워내기 위한 온 손길을 맞춰 나아가길 희망하며 이를 위해 교사노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앞장서 나갈 것이다.

<박소영 대전교사노동조합 정책실장·대전자양초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