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고교학점제 추진, '졸속, 밀어붙이기' 등 비난 쏟아져
교육부 고교학점제 추진, '졸속, 밀어붙이기' 등 비난 쏟아져
  • 권성하 기자
  • 승인 2021.08.2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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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단체, "교사확충 대책 없다, 학생들만 피해 볼 것"
학생·학부모, "매년 바뀌는 입시체계 혼란스럽다"
입시전문가들, "지역별, 학교별 수준 반영 못하면 성공 힘들어"
정부가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2023학년도부터 전국 95%의 일반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를 적용하고, 2025학년도부터 모든 고교에서 전면 시행하는 '고교학점제 단계적 이행계획'을 발표했다.[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정부가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교에 진학하는 2023학년도부터 전국 95%의 일반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를 적용하고, 2025학년도부터 모든 고교에서 전면 시행하는 '고교학점제 단계적 이행계획'을 발표했다.[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정부가 현재 중학교 2학년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2023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를 추진하기로 발표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사 확충 계획도 없고, 지역별·학교별 특성화교육 프로그램의 질과 양 차이에 따른 교육 격차 우려도 제기된다. 과목별 평가 기준에 대한 공정성 시비도 불거질 수 있어 '졸속 추진'이라는 지적이다.

교육부는 23일 고교교육 혁신추진단 회의를 열고 '2025년 일반계고 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한 고교학점제 단계적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2023년부터 전국 95%의 일반계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를 적용하고, 2025학년도부터 모든 고교에서 전면 시행하는 것이 골자다.

계획에 따르면 2023년 고1부터 학점제를 시행하고, 2024년에는 1·2학년이 학점제로 수업을 듣는다.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수업량의 기준은 ‘단위’에서 ‘학점’으로 전환된다. 현재 고등학생들은 시간표에 따라 3년간 204단위 이상 이수하면 되지만 학점제에서는 192학점을 수강해야 한다.

졸업이수 학점 192학점 중 교과는 174학점, 창의적체험활동은 18학점으로 조정된다. 이수시간은 총 2890시간에서 2720시간으로 줄어든다.

수업량이 줄어드는 이유는 고교학점제에 역량을 집중할 여건을 만들고, 192학점이 시간으로 환산하면 2720시간이어서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는 다른 국가에 비해 많다는 설명이다. 교육부가 지목한 다른 국가는 △미국 캘리포니아 2625시간 △캐나다 온타리오 2475시간 △일본 2158시간 △핀란드 2137시간 등이다.

고교 내신평가에서 공통과목과 일반선택과목은 기존 9등급 상대평가를 유지한다. 진로선택과목만 절대평가인 성취평가제를 도입한다.

2023학년도 고교 신입생은 공통과목인 국어와 수학, 영어 성적이 40%에 도달하지 않으면 '최소학업성취수준 보장지도'를 받는다. 교사들이 대상 학생들이 학업성취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보충지도를 해야 한다.

고교학점제 핵심 제도 중 하나인 '미이수'는 2025학년도부터 적용된다. 학업성취율이 40% 미만이거나 출석률이 3분의 2를 밑돌면 미이수 평가를 받는다. 미이수는 학점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과목을 다시 수강해야 한다.

■ 2025학년도까지 입시체계 변화무쌍, "학생과 학부모 울상"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2025학년도까지 해마다 입시 시스템이 변화한다는 점은 곤혹스럽다.

와이튜브 서지원 대표는 "올해 통합수능 실시에 이어 정시 40% 전면확대, 고교학점제 부분도입, 대학입시체제 개편, 특목자사고 폐지,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등이 예고돼 있다"며 "앞으로 매년 입시개편안이 발표되면서 현재 중학생과 초6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긴장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장 모든 선택과목에 '성취평가제(절대평가)'가 적용되는 시점도 2025학년도 고1부터다. 고교학점제 도입에 따라 새롭게 마련하고 있는 2022 개정교육과정도 2025년 고1부터 적용된다. 

교육부는 올해 하반기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을 발표하고, 내년까지 새 교육과정을 고시할 계획이다.

입시전문가들은 정부가 고교학점제 전면 적용을 위한 단계적 이행계획을 세우면서 놓친 부분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임성호 대표는 "내신 적용 방식부터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중에서 선택하기 힘들고, 절대평가를 하게되면  상위권 고교로 집중화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며 "수능과 고교내신 가운데 하나를 무력화시키는 상황이 되거나 수능이 무력화되면 현재 학생부종합전형 축소 및 정시 확대 기조에 역행하는 결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학교 수업이 수능에 영향력 있는 과목에만 학생들이 집중하는 부작용을 낼 수 있어 과목에 대한 학생들의 선택권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고교학점제의 당초 취지와도 엇박자가 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현재 중2 학생들이 고교에 진학하는 2025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고 밝혔지만 오히려 현재 중1 학생까지는 고교학점제보다 올해 처음 실시되는 '문이과 통합수능' 결과가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통합수능 첫해 결과에 따라 고등학교 선택지형에 큰 변화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문과 경제학과에서도 수학 미적분 내신을 권장하는 등 문이과 구분이 없어지는 추세가 고교학점제 보다 더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임성호 대표는 "현재 고2학생부터 서울대가 정시 수능에서도 학교 내신성적을 반영한다고 발표해 오히려 중2, 중1 학생들의 내신 중요도가 더 커졌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시 수능과 학생부교과는 확대되고, 학생부종합은 축소되는 현행 대학입시 체제의 기본틀이 그대로 유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현재 초6 학생들은 오는 2024년 2월 입시개편안이 발표될 때가지 앞으로 3년 동안 입시 변화에 따른 중.고등학교 선택에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올해 문이과 통합수능 도입, 2022년 주요대학 정시 40% 전면 확대, 2023년 고교학점제 부분 도입, 2024년 2월 입시제도 개편,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 등 매년 입시 변화가 이어진다. 또 2024년은 자사고 전면 폐지가 예고된 해다. 자사고 폐지는 2025학년도부터 적용된다.

고교학점제가 부분 도입되는 중2, 중1 학생도 고교 진학 단계에서 학교별 활동 결과에 따라 초6부터 전면 적용되는 시점에서는 고교간 유불리도 발생할 수도 있다. 결국 고교 선호도 지형 변화에 결정적 지각변동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김진환 콩코디아국제대학 진로진학센터장(전 성균관대 입학상담관)은 "이번 계획안을 통해 정부가 수능과 학교 내신 평가에서 상대 또는 절대평가로 단일화하는 것이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인정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학입시 제도 개편이 어떤 방향으로 결정되느냐에 따라 고교학점제의 성패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교학점제에 따른 일반공통과목과 진로에 따른 선택과목 예시 [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고교학점제에 따른 일반공통과목과 진로에 따른 선택과목 예시 [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 싸늘한 학교 현장, "현실은 선택과목 교사 감축... 제대로 준비하는 것 맞나?"

학교와 교원단체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당장 학교 현장에서는 '교원 충원'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목소리다.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학생들의 최소 학업성취수준 보장지도 등 책임교육이 강화되는데 그만큼 교사들의 업무도 늘어난다.

교육부는 강사 채용이나 계절학기 활용 등을 통해 부담을 줄인다는 입장이지만 교원단체들은 싸늘하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성명을 통해 "교원의 72%가 교사부족 등 여건 미비로 고교학점제 도입을 반대했다"며 "교사 확충과 교육격차 해소 등 필수 대책 없이는 학생들만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국교직원노조 대전지부도 24일 성명을 내고, 정부 고교학점제 시행에 따른 대전교육청의 무대책을 성토하는 목소리를 냈다.

전교조대전지부는 "대전교육청이 내년도 임용 교사 규모를 사전예고했는데 유치원과 초등교사는 17명, 중등 인원은 78명에 불과해 '쥐꼬리' 선발에 그쳤다. 심지어 중등 영어교과는 2년 연속 선발인원이 없다"며 "2023학년도부터 고교학점제를 실시하면서 선택과목 교원은 오히려 감축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고, 부족한 교원을 비정규직이나 순회교사로 돌려막는 구조조정을 하려고 한다"고 날선 비판을 이어갔다.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 학교간 교육격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학생들이 원하는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이나 특성화된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학교별 여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또 교육부가 수능에 논·서술형 문제를 도입하는 방안도 사교육 시장만 키울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독일의 아비투어나 프랑스의 바칼로레아처럼 논리나 증거를 갖고 쓴 글을 통해 사고력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여론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공교육의 테두리에서 모두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해소시켜 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 논·서술형 시험은 평가의 공정성 시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대전 둔산의 한 학부모는 "정부가 조국 전 장관의 자녀 입학 문제로 학생부종합전형의 정성평가에 흠집이 나자 부랴부랴 정량평가인 수능을 강화한 것 아니냐"며 "갑자기 정성평가의 끝판왕인 '논·서술형 시험'을 수능에 도입하겠다는 것은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다"고 비판했다.

한편, 교육부는 2025년 고교학점제가 전면 시행된 후 적용할 2028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안을 2024년 2월에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