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박소영 대전교사노조 정책실장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박소영 대전교사노조 정책실장
  • 박소영 대전자양초 교사
  • 승인 2021.05.31 1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새 학년, 첫날이 되면 어김없이 아이들에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보도록 한다. 자기소개서에 빠지지 않는 것은 이름, 생일, 가족관계 그리고 장·래·희·망!

아이들이 써낸 장래희망을 보면 대통령부터 의사, 경찰, 그리고 요즘 인기가 많은 유튜버까지 참 다양하다. 저마다 자신의 삶을 멋지고 특별하게 살아내겠다는 의지가 엿보여서 참 기특하기도 하고 그 아이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는 것 같아 유심히 살펴본다.

그렇게 아이들이 써낸 자기소개서를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이름: 박소영 / 장래희망: 선생님'

박소영 대전교사노조 정책실장/대전자양초 교사

나의 장래희망은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처음 썼던 장래희망 그대로 지금까지 변치 않는 나의 장래희망이다. 어렸을 땐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대단하다고 생각 되어지는 사람이 선생님이어서 그리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는 모르는 것을 가르쳐 주시는 선생님이 정말 대단해 보였을 뿐만 아니라 앞에 서 계시는 선생님 자리에 내가 서 있다고 상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고 설레어 다른 꿈은 생각도 해보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된 지금도 왜 꿈이 선생님일까? 정확히 말하면 '보통의 선생님' 이 되는 것이 앞으로 허락된 내 삶의 장래희망이다.

'보통의 선생님'

보통이란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어 별다르지 않고 평범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지금 내 꿈은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고, 평범한 선생님인 것이다. 가장 행복한 삶은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않은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누군가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보통의 삶, 보통의 선생님!

어떤 이는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철밥통이라고 하더니 참 나태한 사람이군 하며 혀를 찰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을 괜히 대단한 것처럼 말한다고 꾸중할 수도 있다. 사실 나도 보통의 선생님으로 사는 것이 참 당연하고 쉬운 일인 줄 알았다.

출근하면 아이들과 인사하고 수업시간에는 가르치고 배우며, 같이 울고 웃는 보통의 선생님이 저절로 되는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교직 생활이 한 해 두 해 지날수록 그런 보통의 날이 얼마나 귀하고 또 어려운 것인지 깨달았다.

아이들과 눈 맞추고 가르치는 것 외에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선생님이 되기 전 알지 못했던 업무, 업무, 업무...

어떤 날은 각종 기자재를 점검하느라 하루가 다 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외부 강사를 채용하고 관리하느라, 어떤 날은 각종 자료를 통계 내고 수집해서 제출하라는 공문을 처리하느라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내가 선생님인지 일반 회사원인지 잘 모르겠는 어떤 날들이 상당히 많았다. 그런 날은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과 내가 지금 무얼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허탈감에 어린 시절 나의 장래희망이 원망스러울 때가 많았다.

수업을 준비하느라 바쁘고, 학부모들과 상담하며 아이들을 관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그런 일상이 선생님의 하루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과는 전혀 거리가 일들을 처리하는 것이 선생님이 하는 주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과연 나는 내 꿈을 생각하며 가슴이 설레었을까?

굉장히 억울했다. 왜 아이들과 호흡하는 시간보다 컴퓨터랑 씨름하는 시간이 더 많아야하지?

우리 반 아이들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가르치고 나는 그 사람의 뒤처리를 하느라 종종거리고 있는 거지?

이런 고민과 허무함이 극에 달할 때 즈음 나보다 먼저 고민을 하고 해결하고자 행동하는 곳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대·전·교·사·노·동·조·합'

대전교사노조를 창립하신 선생님들과 내가 고민하게 된 계기와 과정은 달랐지만 꾸고 있는 꿈은 같았다.

보통의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삶을 키워 나가는 것!

누군가는 조직의 꿈이 겨우 그거냐고 비웃을 수도 있고,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길래 호들갑이냐며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지금의 학교는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물론 학생 인권이 향상되고, 교육 방법이 다양해지면서 양질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가 짙은 법!

학교에서 선생님이 설 자리가 줄고, 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과연 학교 밖 사람들은 알까?

무언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 방관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대전교사노조를 응원하고 함께 일하고 있다. 이제 시작이다. 긴 터널을 지나고 또 지나야 할 것이다. 기득권이라 여겨지는 철밥통 선생님들의 이기적인 투정이라고 치부해버리는 편견에 우리의 진심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 지 고민이 깊다. 하지만 보통이 아닌 학교생활 때문에 고민하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설레는 고민이다.

보통의 삶이 어려운 것이라는 것 말고 내가 길지 않은 인생을 통해 깨달은 것이 하나 더 있는데 진심은 통한다는 것이다. 단지 시간이 걸릴 뿐!

그 진심을 전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신 교육사랑신문에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난 나의 동료들이 후배들이 그리고 나의 제자들이 꿈꾸고 있는 희망을 꼭 이뤘으면 좋겠다. 희망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과정이, 그리고 꿈에 가까워져 가는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도 아직 미완인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대전교사노조 선생님들과 함께 지치지 않고 걸어갈 것이다.

대전교사노조가 어떻게 꿈을 이뤄가는지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를 통해 또는 뉴스 기사를 통해 독자분들이 눈여겨 봐주시면 좋겠다는 깜찍한 바람도 하나 덧붙이면서 교실에서 보내는 첫 번째 편지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