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움내움 프로젝트] 학생기자들이 만난 직업 - '고고학자(考古學者·Archaeology)’
[세움내움 프로젝트] 학생기자들이 만난 직업 - '고고학자(考古學者·Archaeology)’
  • 김상희 기자
  • 승인 2020.07.22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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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남대 고고학과 박양진 교수를 만나다

인류와 지구상에 존재했던 생명체의 흔적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시대의 기록되지 않은 역사를 밝혀내는 ‘고고학자(考古學者·Archaeology)’들이다.

고고학자는 사라진 문명이나 인류의 흔적을 추적하고, 발굴하는 일을 한다. 인류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았던 장소도 고고학의 연구 대상이다. 때문에 역사, 지리, 지질학, 생물학, 건축학, 음악사학, 미술사학, 인류학 등을 망라하는 사회과학 학문이다. 숙명적으로 ‘말 없는 역사’를 탐구하는 직업이다.

고고학은 어려워 보이지만 영화 ‘인디애너존스’나 ‘툼레이더’, ‘박물관이 살아있다’ 등을 통해 친숙한 학문이다. 미래의 고고학자를 꿈꾸는 친구들을 위해 매헌 윤봉길 의사의 ‘세움내움 운동(세상을 움직이려면 내 몸부터 움직여라)’을 실천하는 월진회청소년기자단이 나섰다.

‘고고학자’라는 진로·직업탐색을 위해 박서진(대전삼천중3), 빈서연(대전삼천중3), 이준수(대전봉명중2), 김진서(대전유성중2), 이하린(대전문정중1), 권민서(대전문정중1), 김현서(유성중1), 양태유(경남거창샛별중1), 홍예은(충남여고2) 학생기자가 충남대 고고학과 박양진 교수를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박양진 교수는 서울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했고, 미국 하버드대학교 인류학과 대학원에서 문학석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와 미국 UCLA고고학연구소, 하버드대 인류학과에서 방문학자를 했으며 한국청동기학회장, 세계동아시아고고학회장, 전국고고학교수협의회장 등을 역임한 세계적인 고고학자다.

주요 연구는 ‘중국 북부지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 연구’, ‘고대 국가 부여의 고고학적 연구’, ‘한국의 일본 식민지 고고학 및 그 유산’, ‘한국과 식민지 고고학의 어휘와 상징, 유산’ 등이 있다.

이집트 기자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멕시코 티오티와칸 유적, 중국 지린 지안 고구려 장군총, 페루 마추픽추 잉카유적, 이탈리아 폼페이유적, 터키 트로이 유적 등 세계 곳곳을 다니는 탐험가이기도 하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매헌 윤봉길의사께서 설립한 애국단체 ‘월진회’의 청소년기자단 박서진, 빈서연, 이준수, 이준영, 이하린, 권민서, 김현서, 양태유입니다. 청소년들의 꿈과 끼, 진로 탐색을 위한 명사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이번에 취재할 직업은 고고학자인데요, 교수님은 어떤 계기로 고고학자가 되셨나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박서진)

“네. 반갑습니다.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충남대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청소년기자단 학생들이 관심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기자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부럽습니다. 여러분들을 칭찬해 드리고 싶습니다. 고고학자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이 있을 것 같습니다. 첫 번째 질문으로 제가 어떻게 고고학자가 됐는지 물으셨는데 저도 잘 모릅니다.(웃음) 어쩌다보니 고고학자가 됐다고 할수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인문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문사철(文史哲)학과들이 인문대에 있습니다. 입학 당시 학과가 정해지지 않았고 문사철 중에서 어디로 진학을 할까 상당히 고민이 많았습니다. 대체로 그때는 1학년 마치고 2학년 되면서 신청을 해서 학과 배정을 합니다. 문사철을 모두 좋아하는데 그중 역사를 가장 좋아하고 역사는 문학보다 철학보다는 제가 개인적으로 여행다니는 것을 좋아하므로 역사를 전공하면 여러 곳을 다녀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역마살’이라고 들어보셨나요. 가만히 집에 있지못하고 여러곳을 돌아다니는 것을 말하는데 제가 성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 쪽으로 가야되겠다 생각했습니다. 역사관련 학과가 여러개 있습니다. 그중에 국사학과 서양학과 동양학과 고고학과 있었는데 고민을 하다가 고고학이 가지고 있는 장점중에 하나가 연구실 안에서 공부하기 보다는 밖에서 발굴이나 조사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연구와 현장조사를 같이 할 수 있는 것이 고고학의 장점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진로를 정했습니다. 대학 2학년에 고고학과를 진학한다고 당연히 고고학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학과 공부를 모두 마치고 대학원 진학도 해야 더 전문성 있는 직업으로서의 고고학자가 되는 것이지요. 고고학을 평생의 직업으로 하게 되는 데에는 저의 지도교수님이 많이 이끌어 주셨어요. 제가 공부를 안하겠다고 했는데 공부해야한다고 권유해 해주시고 칭찬해 주시고 이끌어주셨습니다. 결국 고고학에 진학한 것은 제 취향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고고학자가 된 것은 당시의 제 지도교수님께서 많이 이끌어 주신 덕분입니다.”

박서진(대전삼천중3)

- 고고학은 특별한 학문처럼 느껴집니다. 교수님이 공부하던 시절에도 고고학은 인기가 있는 학문이었나요? 고고학자가 되겠다고 다짐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어땠는지 알고싶습니다.(박서진)

“여러분은 고고학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어떤 학문인지 아시나요? 고고학자 중에서 전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고고학자는 인디애나존스가 있습니다.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영화에 나오지요. 고고학의 역사를 보면 인디애나존스에서도 나오지만 옛날 2차세계대전 이전에 제국주의 시대에 특히 서구 열강들이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마야유적 등을 조사하면서 제국주의학문, 귀족의 학문으로 시작했습니다. 그 이후에 과학으로서의 학문으로 고고학이 정립됐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고고학과를 선택하거나 지금도 충남대 고고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오지만 개인적인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3D학문’이라고 합니다. 3D는 dirty, dangerous, difficult 인데, 3D는 직업중에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안하려 하니까 3D업종에서 일합니다. 고고학도 3D학문입니다. 왜냐하면 땅을 파는 일이 깨끗한 일도 아니고 힘든 일이고, 쉽지 않고 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인기가 높은 학문은 아니라고 할수 있습니다. (여러분은)일반적으로 어떤 직업을 선호하나요? 판검사를 선호하는데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의사나 판검사가 되라고 얘기하셨습니다. 부모님이 하도 의사가 되라고 하셔서 이과를 안가고 문과를 선택했습니다.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겁니다. 부모님이 얘기하면 따라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처럼 반대로 가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인문계를 갔는데 흔히 판검사나 고시를 보고 고위 공무원이 되는 것을 일반적으로 선호했지만 저는 인문대학 문사철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선택이 부모님의 마음에 안드셨을텐데요. 흔히 판검사, 의사가 되면 좋으리라 생각하셨을텐데 그래도 제가 고고학을 공부할 때 항상 응원을 해주셨고, 고고학을 하면서 학자가 되는 것이니까 학자의 가치, 위상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셔서 제가 고고학자가 되고,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에는 호감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고고학자가 되었습니다.”

- 고고학자가 되려면 어떤 공부가 필요한가요? 따야 할 자격증 같은 것이 있나요?(빈서연)

“고고학자가 되려면 물론 전공공부 같은 것은 나중에 학부 고고학전공이나 대학원에 진학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고고학자 되기 위해서는 초중고에 특별히 공부할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 인문학자니까 인문학의 특징이라고 하는 다양한 분야가 있고, 여러 주제에 여러 분야의 책도 많이 읽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가 호기심을 갖고 호기심을 느낀 분야에 대해 탐구를 하고 찾아보고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전교생 친구들에게 고고학자 되고 싶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고고학자가 되려고 하면 호기심과 함께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 passion, 사랑 love 라고 해도 좋고, 열정,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전공과 관련해서 도움이 되는 것은 인문학이 대체로 그렇지만 고고학자도 외국어, 언어를 잘하면 특히 자기가 관심이 있는 지역에 대해서, 저는 중국 고고학을 전공했는데 우리 학과에는 일본고고학, 이집트 고고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관련 전공이 늘고 있는데 전공 지역의 언어를 공부하면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언어는 하루아침에 벼락치기로 잘하기는 어려우므로 차근차근 벽돌을 쌓듯이 기초를 다지면서 오랫동안 준비해야 합니다. 때문에 언어공부를 주력하세요. 영어는 세계공통어니까 좋겠지요. 자기가 관심있는 지역의 언어라면 스페인어, 심지어 아랍어, 또 우리나라는 최근 몽골이나 러시아에 가서도 고고학 조사를 합니다. 그러면 몽골어, 러시아어가 많은 도움이 되죠. 고고학 공부에서 자격증은 고고학자 중에 진로로서 학생들이 많이 생각하는 것이 학예사라는 직업입니다. 박물관에 가면 박물관의 전시를 기획, 설치를 하는 사람이 학예사예요. 발굴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발굴 업무를 지휘하고, 진행하는 사람도 학예사입니다. 국립박물관이나 민간박물관에도 학예사가 있는데 자격증에 준하는 정학예사 등이 있습니다. 발굴현장에도 조사 보조원, 조사원, 책임 조사원 등 경력과 지식, 전문성에 따라 자격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런것도 이제 오랫동안 이 분야에 종사를 하면 취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빈서연(대전삼천중3)

- 지금까지 연구하신 것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나 발굴성과를 알고 싶습니다. 또 가장 존경하는 고고학자는 어떤 분인가요?(빈서연)

“글쎄요 많기는한데, 제가 직접 발굴에 참여한 것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서울의 백제유적입니다. 삼국시대 백제가 처음에는 수도를 서울 근처 한성에 세웠어요.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공주 웅진, 부여 사비로 이사를 갔지요. 백제가 한성 서울에 수도를 두고 있을 때의 중요한 유적들이 아직 서울에 많이 남아있습니다. 백제 왕릉급 무덤에 해당하는 석촌동, 석촌호수 롯데월드 들어보셨죠? 석촌호수 남쪽에 백제의 왕릉 혹은 지배계층의 무덤 수백기가 있었습니다. 70-80년대에 개발이 되면서 대부분이 파괴됐고 일부만 남아서 발굴을 했습니다. 그때가 여러분이 태어나기 전인 88서울올림픽 준비를 할 때예요. 강남지역 정비를 해야하니까 그 일환으로 석촌동에 있는 백제 왕릉 무덤 발굴을 했어요. 거기에 참여했고, 올림픽 경기장 주변 정비를 하다보니 한성백제 시대의 토성이 확인된 겁니다. 이게 몽촌토성인데 지금도 잘 보존돼 있는 유적이죠. 몽촌토성에도 1년에 8-10개월 머물면서 발굴했던 경험이 있어요. 오랫동안 했지요. 대개 고고학이 든 무엇이든 자기가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 했던 경험이 소중하고 신기합니다. 그때 발굴했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연구성과로는 저는 중국고고학 공부를 하면서 최근에 와서는 동북 지방에 있는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이 있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고고학 연구지요. 우리 역사에 부여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충남 부여 말고 고대국가 중에 부여가 있습니다. 혹시 들어본 적 있나요? 한국사에서 배우지요? 부여가 굉장히 중요한데 삼국시대 이전이죠. 부여가 한반도 내에 있지 않고 중국에 동북 지방에 있으니까 연구가 힘들고 관심도 낮은 편입니다. 관심을 높이고 연구도 관철시키기 위해 부여 고고학과 같은 시기에 선비라고 하는 우리의 친척 정도 되는 나라인 선비 고고학도 연구하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고고학자를 존경하느냐는 일반적으로 유명한 고고학자는 인디애나존스인가요? 저는 전혀 존경하지 않습니다. 물론 가상의 인물이지만(웃음) 인디애나존스는 제국 서구열강들이 전세계의 약소국에 가서 불법적으로 발굴·도굴을 하고 보물을 탈취하는 무대의 배경 속에서 활동하는 사람입니다. 실존 고고학자 중에는 슐리만이 있습니다. 고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하인리히 슐리만’이라는 사람을 알고있는데 트로이 유적을 발굴했습니다. 호머의 서시시 ‘일리아드 오디세이’에 트로이 전쟁이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의 연합군과 트로이가 전쟁을 합니다. 이 트로이가 실존하는 도시였을 것이라고 슐리만이 생각을 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거금을 투자합니다. 결국 발굴해서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유명해진 사람입니다. 찾기는 찾았는데 트로이가 3000년 정도의 아주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슐리만이 찾은 것은 실제 트로이와 1000년의 차이가 났습니다. 그런 착오도 있었죠. 소위 일반인들이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고고학자는 제가 존경하는 사람은 아니고, 제가 가장 존경하는 고고학자는 필드에서 묵묵히 땀흘리며 일하는 야외 고고학자들입니다. 더운 날씨에도 전국 발굴현장에서 땀흘리며 발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외 필드 고고학자, 무명의 고고학자를 가장 존경합니다.”

- 고대 유물이 발굴되면서 기존의 역사가 달라진 경우가 있나요? 또 유물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알수 있는지, 유물들이 어디에 매장돼 있는지를 어떻게 아는지가 궁금합니다.(이준수)

“질문을 한번에 여러가지를 물어보네요. 3-4가지를 묻네요.(웃음) 발굴이라고 하는 것은 역사학과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아까 문사철 중에서 제가 역사학에 관심이 있다고 했죠? 역사학은 기록을 가지고 공부를 합니다. 문헌 기록, 역사서 등을 잘 검토해서 연구하는데 고고학은 물질 자료를 가지고 연구를 합니다. 유물, 토기, 석기, 금관 등의 유물은 인공유물인데 심지어 자연유물들도 있지요. 사람들이 먹었던 음식이나 잡았던 동물이라든지 그런것도 중요한 유물입니다. 과거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 주거지, 집자리. 도시, 마을, 죽은 사람을 매장했던 무덤도 고고학자들이 연구하는 대상물이죠. 그래서 문헌기록을 연구하는 역사학과는 달리 고고학자들이 연구하는 대상은 굉장히 다양하고 풍부합니다. 그러기에 고고학은 문헌기록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첫째는 문헌기록이라고 하는 것이 출현한 시점이 우리나라는 2000년전, 중국의 역사기록에 한반도와 관련된 것이 언급된 것이 빨라야 2200-2300년전입니다. 그 이전은 어떤 문헌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면 그 이전시기는 유일하게 고고학을 통해서만 연구가 가능합니다. 세계적으로도 문헌기록이 출현한 것이 제일 빠른 것이 5000년전 무렵이죠. 그럼 그 이전에 인류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고고학만이 밝혀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들면 인류의 진화, 최초의 인류가 어디에서 출현했나요? 물론 아프리카에서 출현했지요. 한반도의 최초인류는 과연 언제 출현했는지,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았는지, 한반도 흔히 한민족의 조상은 어떤 사람들인지는 고고학만이 알 수 있습니다. 문헌기록이 없는 시대, 심지어 문헌기록이 있는 시대라 할지라도 고고학이 그런 문헌기록의 불충분한 점을 굉장히 많이 채워줍니다. 그러한 사례가 굉장히 많아요. 삼국시대라 해도 가야는 문헌기록이 많지 않습니다. 가야는 오히려 고고학 발굴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백제도 관련 기록은 어떤 역사인가요? 백제 왕실의 역사, 지배층의 역사만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시기에 전남·전북지역 사람은 어떻게 살았는가하는 문헌기록이 거의 없습니다. 삼국시대의 경우도 발굴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중국의 사천요리 좋아하죠? 매운 요리로 유명한 사천지방에서 아주 엄청난 청동기 시대 문명이 발굴됐습니다. 삼성퇴(三星堆·싼싱투이)라는 유적인데 청동으로 만든 거대한 나무가 출토됐습니다. 나무 높이가 4m나 됩니다. 청동 사람상도 발견됐는데 1m80cm예요. 단 위에 올라가 있어서 전체 높이가 2m 넘는 엄청난 크기의 사람상이 발견됐습니다. 이런 것은 전세계 어디에도 없어요. 3400년 전 유물이에요. 하지만 그때 당시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당시 황하 중류 유역에는 상나라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기록은 많아요. 하지만 장강 상류 지역인 사천지역에 그러한 문명이 있었다는 것은 어떠한 기록에도 없습니다. 문헌기록이 가지는 한계와 불충분함, 편견, 그런 것을 고고학 자료가 극복하는 겁니다. 보완할 수 있고, 채워줄 수 있습니다. 신대륙의 경우 마야문명에서도 확인되고 있습니다. 고고학이 기여하고 있는 분야가 굉장히 많습니다. 유물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떻게 알수 있을까요? 고고학자들은 딱 보면 압니다. 어떻게 알까요? 연구를 열심히 하면 됩니다. 왜냐면 유물이 언제 만들어졌느냐는 것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들은 각 시기와 지역에 따라서 결정이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만 생각해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바뀌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문헌기록이 없는 시대를 흔히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등으로 얘기하는데 그것은 무슨 뜻이냐면 그런 순서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고려시대는 고려청자, 조선시대는 조선백자 이런 식입니다. 시기가 바뀔 때마다 사용하는 물건들이 달라지는 겁니다. 5-10년 단위로 바뀌기도 하죠. 요즘 물건들은 굉장히 빨리 바뀌기도 하지요. 여러분들도 핸드폰을 보고 친구 것이 몇 년 모델이고, 얼마나 됬는지, 5년인지 10년 됐는지 알 수 있죠? 왜냐면 여러분들은 핸드폰의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자는 유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그걸 보면 언제 쯤인지라는 것을 배워서 아는 겁니다. 자기의 전문성을 키웠기 떄문에 알수 있는 겁니다. 물건이 시대에 따라서 변하고 지역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데 삼국시대 고구려의 토기와 백제, 신라의 것이 다릅니다. 가야와 신라는 굉장히 가까워서 아주 비슷해도 다릅니다. 지역마다 다르고, 그것이 문화적인 전통입니다. 문화적인 전통은 일종의 패션이죠. 기능은 같지만 사람들의 선호도가 다르고 선호도가 시기에 따라 바뀌고 지역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전문가는)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유물들이 어디에 매장되어 있는지 어떻게 아는냐? 역시 딱 보면 압니다. 그럼 어떻게 보느냐. 사실 땅속에 너무도 잘 묻혀있으면 알기 어렵습니다. 잘 묻혀있지만 알기 어려운데 알아내는 또 방법이 있습니다. 요즘은 물리탐사라는 방법이 있어요. 예를들면 금속탐지기라는 것 들어보셨죠? 레이다도 있습니다. 레이다는 대기중에서 쏘면 무언가에 부딪혀 돌아오는 것인데 GPR(Ground Penetrating Radar·동공탐사레이더)를 통해 땅을 투과하는 레이다파를 쏴서 지표 아래를 탐사합니다. 땅 속에 돌로 만든 무덤이 있으면 레이다를 쏘면 흙 사이를 가다가 돌을 만나면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이런 장비를 통해 지하에 묻혀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지하에 묻혀 있으면 사람들이 경작을 하고, 길을 내거나, 땅을 파거나 활동들을 하면서 땅 속에 묻혀 있던 것들이 지표 위로 드러납니다. 그래서 지표 위에 토기편, 석기편, 이런것들이 발견이 되는 겁니다. 유적을 찾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지표조사예요. 해당 지역에 가서 걸어다니면서 땅 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면 토기,석기편일 수도 있고, 무덤의 파편 일수도 있고 하지요. 또 항공사진도 이용합니다. 항공사진을 보면 최근에 그런 외신 뉴스들이 심심치않게 나오는데 지하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서 지상에 자라는 풀이나 나무들이 어느 곳은 아주 무성하거나 어느곳은 잘 자라지 않는데 그 이유를 그냥 지표에서는 알기 어렵습니다.지하에 뭔가 다른 물질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지상의 식물들의 분포에서 차이가 나고, 그것을 항공사진으로 크게 볼 때 넓은 시각에서 볼 때 알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야 멕시코 문명의 경우는 밀림 지대에 있는데 밀림은 나무들이 완전히 덮혀 알기가 어렵죠. 그런 경우도 항공사진이나 요즘은 적외선 사진을 찍어서 나무들을 사진 속에서 과학기술로 제거하고 지표를 살펴 봅니다. 유물을 찾는 방법은 굉장히 다양하고 최첨단의 과학기술이 사용이 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방법은 고고학자들이 현장에 가서 유적 위를 걸어다니면서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준수(대전봉명중2)

- 고고학자 중에서도 기독교인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분들은 창조론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지 궁금합니다.(이준수)

“좋은 질문입니다. 저도 가톨릭 신자입니다. 기독교인이죠. 기독교인들은 개신교하고 가톨릭가 있는데, 또 신천지 같은(웃음) 기독교입니다. 다 이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됐든 기독교인들도 당연히 고고학자가 될 수 있지요. 뿐만 아니라 불교도 있고 이슬람교도 있습니다. 이슬람도 (기독교와) 사촌 관계인데 역시 아브라함 계열의 종교이지요. 기독교는 창조론이라고, 성경에 나오는 말씀이 있는데 기독교가 위세를 떨치고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 이후 까지도 창조론 만이 인류의 역사, 더 크게는 우주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은 종교적인 영역이죠. 역사 혹은 고고학은 학문적인 영역입니다. 학문적인 영역에서는 객관적인 증거 또는 과학적인 연구 방법론을 사용하면서 연구하는 것이죠. 한때는 심지어 창조론을 떠나서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한 것이 언제냐 그것까지도 계산을 했어요. 모르죠 잘. 기원전 4004년에 이루어졌다는 계산이 있는데 그것은 종교적인 영역인데 사실로서 학문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오히려 인류의 역사, 우주의 역사를 더 잘 알게되면서 기독교에서 의미하는 창조론의 의미가 무엇인지 종교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로봇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박사님 약력을 살펴보니 고고학 외에도 인류학을 전공하시면서 문학석사와 철학박사를 하셨는데 다양한 공부를 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김진서)

“여러분들이 중학생이니까 잘 몰라서 그런 겁니다. 대학이나 대학원에 진학하면 학위의 이름이 일단 인문계열의 학과를 졸업하면 문학사를 줍니다. 문학사라는 이름은 대학제도가 서양의 영향을 받아서 서양의 학위 이름을 가져와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학사가 ‘Bachelor of Arts’라는 뜻이 있습니다. 석사도 자기 전공에 따라서 요즘은 고학석사, 이학석사, 문학석사 이렇게 말합니다. 문학이라는 것이 사실은 시, 소설 이런 좁은 의미의 문학이 아니라 광범위한 의미의 인문학이라는 뜻입니다. 인문학 석사라는 뜻이지 시나 소설같은 좁은 의미의 석사가 아닙니다.”

김진서(대전유성중2)
김진서(대전유성중2)

- 고고학자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소양으로 저는 탐구심과 지적호기심, 그리고 흥미라고 생각합니다. 박사님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이고, 어떤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권민서)

“말만 하면 안됩니다. 자기가 행동으로 옮겨서 찾아보고 더 공부도 하고 연구도 해야 합니다. 학문분야 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체육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고 싶고, 더 잘하고 싶고, 더더 잘하고 싶고, 그런 의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중학생, 고등학생, 고고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공부를 해라 보다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를 공부해라 계속 읽고 연구하는 것이 좋습니다. 가능하면 지금부터 좁게 공부하지 말고 넓게 공부하면 좋습니다.”

권민서(대전문정중1)
권민서(대전문정중1)

- 제 꿈은 방송PD나 유튜버입니다. 제 삼촌이 페루에 계서서 마추픽추를 꼭 영상에 담고 싶은데 교수님이 답사하신 국내외 유적지와 명소 중에서 미래의 인기 유튜버인 제가 꼭 소개할 만한 곳이 있나요? 베스트3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권민서)

“삼촌께서는 맞추픽추 가보셨대요? 페루가 고고학 유적이 많이 있는데, 저도 가장 가보고 싶었던 유적이 마추픽추였습니다. 가장 가기 어려우니까요. 잉카의 여러 유적 중 잉카의 수도 쿠즈코도 좋습니다. 그리고 뭐니 뭐니해도 피라미드 유적이 있습니다. 피라미드에 가면 큰 피라미드가 3개있는데 가장 큰 것이 쿠푸왕 피라미드입니다.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면 쿠푸왕 피라미드 안에 왕비의 무덤방과 왕의 무덤방이 있는데 왕의 무덤방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가 줄을 서서 쿠푸왕의 무덤방에 들어갔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왕의 방은 지금 인터뷰하는 장소의 1/4 또는 1/5 정도입니다. 꽤 큰방입니다. 사람이 약 20명 정도 들어갈수 있는 크기입니다. 들어가보면 먼저 관람오신 분들이 쭈그려앉아 피라미드의 의미를 생각하고 무덤방에 압도된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저도 그 안에서 드문 기회를 얻은 것을 기뻐하며 관람했습니다. 한국 단체관람객이 오셨는데 “별거 없네”하시며 금방 30초 만에 나가기도 했지만 실제로 피라미드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습니다. 중국 유적도 많이 있습니다. 만리장성, 병마용갱 등 훌륭한 큰 유적들이 많습니다. 중국과 국교 수립하기 전에 처음 중국에 가서 제일 먼저 보고싶었던 것이 고구려 유적입니다. 특히 광개토왕비 보다는 장군총이 보고 싶었습니다. 가서 보고 정말 옛날이어서 장군총 계단식 무덤에 올라가서 지붕에 올라보고 무덤방에도 들어가 봤습니다. 이상이 가장 가보고 싶었던 3곳이며 다녀와서도 실망하지 않는 성과가 있었던 곳입니다. 유적답사를 하면서 제가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계시는데 그분께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피라미드든 맞추픽추든 유적이 어떤 것인지 의미를 모르면 알 수가 없습니다. 중요성도 느낄수가 없습니다. 쿠푸왕 무덤을 보고 ‘별거 없네’하는 건 당연하죠.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웃음) 오래전에 도굴됐고 그냥 돌로 만든 돌방입니다. 중요한 건 자기가 많이 알수록 보이는 게 많다는 겁니다. 부여에 가면 정림사지 5층석탑이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돌을 쌓아올린 이상한 구조물이죠. 그러나 의미를 따지면 책 한 권을 쓸 만큼 의미가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게 자기가 아는 것의 근거입니다. 그런 공부를 하면 단지 가봤다하고 기념촬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고고학자는 평생 직업으로 해 볼 만한 직업인가요? 직업적인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또 전공 이후 어떤 직업들을 갖게 되는지, 또 업무 강도는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습니다. (김현서)

“고고학자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장점은 탐험, 모험 이런 것이 조금은 있죠. 툼레이더스, 인디애나존스 영화를 보면 항상 모험이나 탐험을 하며 새로운 것, 중요한 것을 발견해 냅니다. 확률이 1/100, 1/1000 이기는 하지만 있기는 있습니다. 그런 기쁨이 있습니다. 또 여행도 할수 있고 상상력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또 장점은 아까 말한 것처럼 연구실에서 연구도 하지만 야외에서 조사도 하는 것이 좋은점이라 생각합니다. 고고학을 전문적으로 하게 되면 어떤 직업이 있을까요? 예전에는 제국주의 귀족들이 주로 했던 학문이지만 직업으로서의 고고학자는 국립박물관, 국립연구소 학예사나 고고학분야 미술사분야도 많습니다. 교수도 있고, 또 우리나라의 구제 발굴을 전문으로 하는 법인이 100여 군데 있는데 조사원을 고용합니다. 그런 것들이 주요 진로입니다. 그 수요가 썩 많다고 하기는 어렵고, 업무강도는 하기 나름입니다. 대개 국립박물관이나 연구소 학예사들이 임용될 때 7급 공무원 정도입니다. 일반적인 공무원 임용은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하는데 차츰 승진을 하고 5급은 행정고시처럼 합격하면 임용되는 시스템입니다. 일반적인 공무원 임용보다 높은 등급에서 시작하는 셈입니다. 경력을 쌓고 하면 5급으로 승진합니다. 공무원이므로 열심히 안하고 놀면서 일 안하는 학예사도 있고, 열심히 하는 학예사도 있습니다.(웃음) 직업은 안정적입니다. 퇴직할 때까지 할 수 있습니다. 학예관으로 승진할 수도 있습니다. 60세까지 정년입니다. 업무강도는 다르지만 열심히 일하는 학예사에게 업무가 주어지겠죠.(웃음)”

김현서(유성중1)
김현서(유성중1)

- 교수님의 논문 중에 ‘식민지 고고학’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김현서)

“식민지 고고학은 말씀드린대로 고고학이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정복하고 그곳의 유적들을 이집트 피라미드, 이란이라크 수메르문명, 인더스 문명 등을 약탈한데서 시작합니다. 동아시아는 직접적 피해는 없었지만 마야문명, 잉카문명 이러한 고대문명의 발생지는 발굴 뿐만 아니라 약탈의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영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가보면 전세계 고대문명의 뛰어난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식민지배의 산물입니다. 대영제국의 식민지에서 약탈해 가져온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스 파르테논신전 지붕 바로 밑에 우수한 대리석 조각들이 있는데 영국 공사관에서 모두 떼어가 대영박물관에 기증했어요. 길이만 80m에 달합니다. 식민지가 아니었는데도 그랬습니다. 제가 쓴 식민고고학의 경우는 우리도 일제강점기 36년이 조금안된 35년 몇 개월을 겪으면서 일제강점기 동안에 일본학자들이 우리의 유적을 발굴하고, 식민사관에 적합하도록 과거를 해석했습니다. 식민 종주국이 피식민지에 대한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고고학 자료를 해석하는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일제강점기 식민사관과 유사하게 다른 지역에서도 매우 많죠. 그러한 부분에 관심을 갖고 논문을 썼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식민고고학의 특징이 무엇인가를 밝혀냈고, 일제 식민고고학의 잔재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가를 고민했습니다. 우리는 남북한이 분단됐는데 그동안 북한 측이 일본식민고고학을 극복하기 위해 한 일, 대한민국이 한 일을 연구했습니다. 탈식민주의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 ‘디지털 고고학’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고학자가 되기 위해 과학 기술 분야도 따로 공부해야 하나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고고학의 학문적 방향이 어떤지 궁금하고, 융합형 인재의 사례에 대해 고고학자이자 교수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양태유)

“디지털은 고고학에서도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가 바뀐 것이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세계로. 제가 발굴할때는 카메라를 3대 들고 다녔습니다. 카메라 종류도 흑백, 컬러, 슬라이드 사진등을 가지고 갔습니다. 슬라이드는 사진 자체가 칼라 그대로 인화가 돼서 환등기에 비추어 멀리 투영을 하는 식입니다. 3가지 종류의 필름을 이용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 카메라를 이용해서 한번 찍어 세가지 방식으로 인화를 하면 됩니다. 디지털화 된 것입니다. 측량할때도 옛날에는 측량기를 가지고 손으로 모두 그렸어요. 요즘은 심지어 3D측량, 3차원측량 이런 것도 있고, 또 데이터도 디지털화가 많이 됐습니다. 메가데이터도 이용합니다. 디지털 발전이 사회 전반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고고학에도 반영되는 겁니다. 과학기술의 분야를 미리 공부할 필요는 없습니다. 고고학자가 되면 주로 쓰는 전문분야인 사진이나 그림, 우리가 유물이 있으면 그림으로서 표현을 하는데 그림표현은 주로 평면도, 단면도로 보여줍니다. 평면이나 단면을 보면 유물의 특징을 잘 알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것도 지금은 3D 측량을 많이 합니다. 천천히 배워도 될 것 같아요. 고고학에서 많이 활용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유물이나 유적을 가상현실VR, 증강현실AR 등으로 유물을 보여주고 만지는 느낌을 주는 겁니다. 유물의 접근성을 실감나게 해주는 방식도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천천히 배우면 될 것 같습니다. 모든 고고학자들이 (첨단기술을)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각 분야에 세부전문가들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3D 측량, 3D 사진, 심지어는 페이스북에도 쉽게 찾아볼수 있는 360도 파노라마 사진 등도 있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측량기술, 카메라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고고학에서도 적극 활용하여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양태유(경남거창샛별중1)
양태유(경남거창샛별중1)

- 고고학을 전공하려는 학생 ·청소년들을 위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또 추천할 만한 책이나 영화, 귀감이 될 만한 사례를 소개해 주세요.(양태유)

“고고학을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다양하게 공부하는 게 좋습니다. 특히 고고학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그와 관련된 역사학, 미술사학, 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고고학에 대한 탐구심, 호기심, 호감을 느끼는 것이 중요합니다. 추천할 만한 고고학 영화는 많습니다. 예전에는 인디애나존스를 잘 몰랐는데 최근 5-6년전 ‘수정해골’편인가 새로운 편이 제작됐습니다. 툼레이더스, 미이라 등도 약간 짝퉁 고고학자들이 나옵니다. 정상적인 고고학자는 재미가 없겠죠.(웃음) 박물관이 살아있다 시리즈도 있습니다. 고고학은 아니지만 박물관 역시 유물을 전시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관련이 있습니다. 박물관도 고고학자들이 취업하는 대표적인 장소입니다. 고고학을 하려면 조금 어렵더라도 장애를 만나더라도 끝까지 해나갈 수 있는 열정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오랜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하린(대전문정중1)
이하린(대전문정중1)

<영상촬영·편집=홍예은·이준수·권민서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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