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의 ‘쭈니(Juny)’에게 듣는 신해철과 실용음악의 세계
넥스트의 ‘쭈니(Juny)’에게 듣는 신해철과 실용음악의 세계
  • 권성하 기자
  • 승인 2018.07.23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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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준 원장, '선생님'으로 인생 2막

N.EX.T(넥스트)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한 획을 그은 록밴드다. 리더인 신해철씨가 갑작스러운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나면서 팀이 해체됐지만 여전히 음악 만큼은 불멸의 레전드로 남아있다.

남은 맴버들은 어떻게 지낼까? 맴버들의 근황은 팬들의 한결같은 궁금증이다. 경기도 용인의 쭌실용음악학원에서 5기 맴버로 활동했던 쭈니(Juny·드럼)를 만났다. 지금은 실용음악학원을 운영하는 '이용준 원장님'이다. 쭈니에게 넥스트의 근황과 신해철씨와의 에피소드, 실용음악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쭈니는 닥터코어911의 드러머이면서 넥스트 5기 드러머다.
쭈니는 닥터코어911의 드러머이면서 넥스트 5기 드러머다.

- 오랜만입니다. 원장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교수님이라고 해야 할지, 뭐가 편하세요? (쭈니는 현재 세종대 실용음악과 기악 지도교수도 하고 있다) 많은 팬들이 근황을 궁금해 합니다.

"교수님은 대학에서나 통하고, 저는 원장이라는 호칭이 편합니다. 해철이 형이 돌아가시고, 두번의 추모공연을 진행하면서 지인 소개로 세종대에 출강하게 됐어요. 지난해는 세종대사이버대가 개설돼 합주실기지도 수업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실용음악학원을 하게 된 것도 사정이 비슷해요. 2008년에 용인시청에서 짧은 기간 평생교육 강의를 했었는데 이게 인연이 돼서 취미생 위주의 실용음악학원을 2011년에 개원하게 됐어요. 지금은 입시 전문학원으로 키우고 있습니다. 서울 노량진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쩌다 보니 용인까지 오게됐네요.(웃음)"

- 많은 팬들이 넥스트의 쭈니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2002년부터 5기 맴버로 활동하다가 2006년 12월 말에 돌연 탈퇴를 했는데 당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해철이 형을 처음 만난게 2001년입니다. 원래 홍대 인디씬에서 닥터코어911이라는 랩메탈 밴드를 하다 쉬고 있었는데 우연히 여러 가수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앨범 '희로애락(Hero 愛 Rock)'에 우리 곡 '8080'이 수록됐어요. 그때 프로듀서가 신해철씨였어요. '야, 너네 해체했으니 같이 한 번 해 볼래'라고 해서 원맨 밴드 형태의 넥스트(신해철 밴드)가 결성됐죠. 그때 만든 게 5집 'The Return of N.EX.T Part 3: 개한민국'입니다. 대형 무대에서 신나게 드럼을 두드렸어요. 해철이 형 음악이 워낙 스케일이 크잖아요. 4년 동안 대형 스타디움 공연만 40차례에 일주일에 꼬박 두세번은 무대에 섰어요. 그러다가 2006년 말에 저와 김동혁 형(건반/기타)이 탈퇴했고, 데빈 형과 쌩(원상욱)도 나왔어요. 탈퇴한 이유요? 글쎄요. 여러가지 복잡한 사정이 있었어요. 우선 음악 시장이 암흑기였어요. 음원 저작권이 없어서 MP3 불법다운로드가 횡행할 때 였어요. 스트리밍 서비스도 전무했고, 소리바다 P2P(peer to peer) 사건이 시끄러울 때였어요. 5집 개한민국은 10만장을 못넘겼습니다. 아이돌 시장 속에서 록밴드를 한다는게 솔직히 힘들었어요."

- 그래도 5집은 여러가지 의미로 넥스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있습니다. 팬들은 단순히 원맨밴드 이상의 의미를 찾기도 합니다.

"일부 팬들은 5기 넥스트를 향해 '신해철 혼자 만의 밴드냐'고 비꼬기도 했어요. 하지만 5집 앨범은 맴버 전원이 참여한 넥스트 첫 앨범이었어요. 그동안은 리프부터 프로듀싱까지 모든 걸 해철이 형이 다 했지만 5집은 맴버 모두가 로직을 연구하고, 외부 엔지니어 도움 없이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저도 드럼세팅과 레코딩, 믹싱, 에디팅까지 제 파트를 직접 다 했어요. 그래서 제작 기간이 굉장히 길었죠. 녹음 3개월에 후작업만 1년이 넘게 걸렸어요. 게다가 무려 더블 앨범입니다. 정치와 종교, 이라크 전쟁 파병반대, 세대갈등, 노숙자, 집창촌 등등 대한민국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전에 없던 노골적 비판을 했죠. 전체 곡에서 절반 이상이 방송사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어요. 불법 다운로드와 싸우고, 심의와 싸우고, 앨범은 망했어요. 하지만 이때 익힌 기술로 지금 실용음악학원을 잘 운영하고 있으니 좋은 공부였던 셈이죠. 5집은 언젠가 리레코딩할 계획입니다. 그 당시 멀티를 거의 갖고 있어서 해 볼만 한 작업입니다."

- 일부 팬들은 마왕 신해철의 독단적 리더십을 탈퇴 이유로 꼽기도 하던데 어땠나요?

"어떤 사람은 파쇼 탓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추구하는 음악성 차이라고 해요. 저보다 9살이나 많은 형이고, 완벽주의자였어요. 솔직히 중압감이 있었죠. 새삼스럽지만 팬들께 하고 싶은 말은 각자의 음악을 찾아서 길을 떠난 것이라고 매듭짓고 싶어요. 오히려 맴버로서 배운 것이 많았어요. 한 번은 12월 31일 장충체육관에서 공연을 할 때 였는데 당시 콘서트 최장 기록은 이승환씨의 4시간 20분이었어요. 우리는 이걸 깨자고 목표를 정했고, 진짜로 새해가 뜰 때까지 공연을 했어요. 공연 뒤에 탈진해서 실려 나갔죠. 밤샘 공연이 몇 번 있었는데 이때는 기록 경신을 신경써서 공연 전날부터 리허설 준비로 잠을 못잤어요. 공연 중에 발라드 타임에 살짝 졸면서 드럼을 쳤어요.(웃음)"

넥스트 5기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 리더 신해철의 웅장한 음악 스케일을 소화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사진 왼쪽이 고 신해철, 맨 오른쪽이 쭈니)
넥스트 5기 멤버로 활동하던 시절, 리더 신해철의 웅장한 음악 스케일을 소화하는 강행군이 이어졌다.(사진 왼쪽이 고 신해철, 맨 오른쪽이 쭈니)

- 닥터코어911은 어떤 팀이었나요? 홍대 인디씬에서는 HOT에 버금가는 인기를 끌었다고 하던데요.

"과찬입니다. 1998년에 기타치던 답십리안(안성훈) 형하고 팀을 만들었어요. 당시 우리는 음악성 만큼 비주얼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힙합 패션에 역동적인 록음악을 선보였어요. 드럼 치는 저 말고 모든 맴버들이 공중에 떠 있었죠. 펑크 패션에 정통 록을 하던 전형적인 록밴드와 달랐던 거죠. 1999년 한해 동안 록 밴드 최초로 일본 후지록페스티벌에 참가했고, 쌈지 사운드페스티벌, 트라이포트 록페스티벌에 참여했어요. 광고도 찍었으니 마니아층은 일궈냈다고 생각합니다. HOT와 비교한 것은 언론이 일방적으로 만든 거예요. 패션 콘셉트가 우연히 HOT 1집 패션과 비슷했어요. 힙합 패션으로 랩메탈을 했고, 그땐 젊고 잘생겼다는 말도 적잖게 들었어요.(웃음) 덕분에 수많은 HOT팬들의 공적이 됐죠. 인디시장은 음악시장의 2-3%도 안 되는데 키보드 워리어들 몇천명을 어떻게 당하겠어요. 그래도 비교 대상이 됐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 왜 정규앨범을 단 한 장만 내고 해체했나요?

"앨범은 모두 5장을 냈어요. 0.5집인 'Hip Hop Aggressive Cross Over'에 이어 정규앨범 1집인 '非正(비정)산조'를 내자마자 팀이 해체됐어요. 기타를 치던 탑(안성훈)형이 앨범 내기 3일 전에 서태지컴퍼니에 발탁됐어요. 서태지가 울트라매니아 앨범으로 솔로로 컴백했는데 장르가 하드코어였어요. 우리 1집이 두달 정도 빨리 나왔는데 장르가 겹쳤어요. 그나마 서태지 컴백 공연에 오프닝으로 초청을 받았는데 당시 공연기획사와 마찰이 있었어요. 그게 스포츠지에 '닥터코어와 서태지가 반목한다'는 식으로 기사가 났죠. 서태지씨 팬들이 난리가 났어요. 미니홈피가 폭파됐습니다. 기타가 공석이라 공연도 제대로 할 수 없었죠. 1년 동안 5명이나 기타 맴버가 바뀌었는데 힘들었어요. 음악을 쉬어야겠다고 생각할 때 제게 손을 내민 사람이 신해철 형이었어요. 4년 동안 넥스트 생활을 하다가 탈퇴한 뒤 2007년에 재결성을 했죠. 그리고 1.5집 '娛樂歌樂(오락가락)'을 냈습니다. 이후 매년 2집 'Eat or Be Eaten'과 2.5집 'The Escape'까지 곡을 만들었어요. 탑형은 지금도 서태지컴퍼니에 있어요. 정규 3집 앨범 내자는 말을 자주 하죠. 한번 해 볼까 합니다."

- 대학에서는 회계학을 전공했던데 전업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중학교 때 우연히 친구의 마이마이(테이프 재생기)에서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피츠(Master Of Puppets)를 들었습니다. 와, 이런 음악이 다 있구나 하는 말이 터져 나왔죠. 그 뒤로 헤비메탈에 빠졌어요. 누나가 치던 통기타를 들고 흉내를 냈는데 음이 달라서 낙원상가로 향했고, 그때 일렉기타를 처음 샀어요. 그걸 들고 열심히 다운피킹을 했습니다. 밴드(스켈레톤)는 영등포고 1학년때 만들었어요. Y2K 고재근이 학교 친구예요. 회계학과에 진학한 것은 부모님 생각입니다. 오히려 대학 전공이 음악을 선택한 것보다 뒤에 결정한 거죠. 1학년 회계학과 수업 시간에 자기소개를 했는데 음악을 하려고 대학에 들어왔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교수님이 회계학과 전공자가 모두 회계사가 되는 게 아니니 꿈을 펼치라고 하더군요. 큰 힘이 됐어요. 다만, 대학 졸업은 아버님과의 약속이어서 지켰습니다. 넥스트 활동도 대학 다니면서 한 겁니다. 중간에 군 문제가 생겨서 본의 아니게 대학원까지 진학했어요. 석사 논문까지 쓰느라 가방끈이 길어졌습니다. 올해 세종대에 실용음악 박사과정이 생겨서 실용음악을 위한 공부를 더 하고 있습니다. 전업 뮤지션의 길은 고교 2학년 수학여행이 계기가 됐습니다. 1000명 가까운 전교생 앞에서 메탈리카 4곡을 합주했어요. 솔로잉과는 엄청 다른 느낌이 들었고, 첫 공연에서 이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용음악과에 진학하지 않은 것은 당시에 전문대 야간에나 개설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반대도 있었고요. 물론 넥스트 멤버가 되니까 도시락까지 챙겨주시면서 응원하셨죠.

-처음부터 드럼을 친 게 아니군요. 기타에서 전향한 이유는 뭔가요?

"처음에는 기타를 들고 스래쉬메탈을 했어요. 그러다 드럼으로 전향했는데 클럽 공연을 하던 시절 팀의 드러머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당시만 해도 인디밴드에서 더블 베이스는 흔치 않았는데 저는 처음부터 투베이스를 밟았어요. 덕분에 닥터코어911이 공격적 성향의 랩메탈 힙합 사운드라는 평가를 얻었어요. 드럼이 신선하다는 말도 들었구요. 훗날 해철이 형 눈에 띄어서 넥스트 합류할 때도 더블 베이스 연주법의 영향이 컸습니다. 해철이 형이 너 투베이스 밟을 줄 아느냐고 묻더라구요. 그래서 손 보다 발이 빨라요, 눈 감고도 해요 라고 했죠."

기타를 치던 쭈니는 파워메탈의 강렬한 드럼 사운드에 매료됐고, 훗날 신해철의 넥스트 멤버가 된 것도 더블 베이스 주법의 영향이 컸다.
기타를 치던 쭈니는 파워메탈의 강렬한 드럼 사운드에 매료됐고, 훗날 신해철의 넥스트 멤버가 된 것도 더블 베이스 주법의 영향이 컸다.

- 경기도 용인에서 실용음악학원을 열었는데 교육프로그램이나 강사진 등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현재는 입시 전문과정을 주로 하는 실용음악학원입니다. 취미반에서 시작해 입시 비중을 늘린 건 2014년부터예요. 학원의 입시반은 전공실기과목, 대학이 요구하는 이론과목(화성학), 시창 청음(악보를 보고 노래하는 것과 음을 듣고 악보에 적는 것), 즉흥연주, 미디작곡 등의 수업이 진행됩니다. 보통 실용음악학원은 보컬 파트가 강한데 우리는 기악 파트에 더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제가 연주자인 탓이죠. 대신 앙상블 수업이 강점입니다. 보컬에 편향된 학원들은 합주 인원을 조절하기가 힘듭니다. 저는 밴드를 했기 때문에 팀을 만들고, 합주를 하면서 디테일한 녹음을 하고, 모니터링하면서 다이나믹을 어떻게 그려 나갈지에 대한 토론 수업을 진행합니다. 사실 대학에 진학하면 무조건 합주를 해야 합니다. 전업 뮤지션이 돼서도 앙상블은 필수입니다. 음악은 혼자 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입니다."

- 많은 학생들이 실용음악과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효과적인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국내 대학 중에 서울예대와 동아방송대, 호원대가 실용음악 빅3 대학으로 불립니다. 많은 학생들의 워너비 대학입니다. 다만,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입시에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대학 졸업 이후에도 전업 뮤지션이 되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있었으면 합니다. 학생들을 상담하거나 입시지도를 하면서 인성의 중요성을 새삼 느낍니다. 음악은 공동 작업이 많습니다. 그래서 인성 교육과 앙상블을 강조하는 겁니다. 어찌보면 실용음악과 자체가 작은 필드입니다. 본인이 필요한 사람이 되도록 항상 연구하고, 노력해야 하죠. 대학에 진학해서도 파트별로 가장 성실하고, 크리에이티브하고, 소통이 되는 친구들이 뽑힙니다. 살아 남으려면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고, 인맥 관리가 중요합니다. 가수 윤종신 선배가 훌륭한 모델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 다음은 녹음 수업을 적극 활용하라는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보컬이나 기악, 미디작곡 모든 분야에서 녹음을 통한 세밀한 교정이 중요합니다. 실용음악은 결과를 바로 알 수 없는 종목입니다. 시험을 치러도 등수를 바로 확인할 수 없어요.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에 많은 학생들이 힘들어해요. 녹음 뿐만 아니라 영상을 찍어서 모니터링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가르칩니다."

- 끝으로 국내외 팬들과 굿모닝충청 교육사랑신문 애독자들에게 한마디 말씀해 주세요.

"여전히 팬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웃음) 만일 있다면 음악을 놓지 않았고, 잠시 쉬고 있을 뿐이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멋진 모습으로 조만간 찾아 뵙겠습니다. 교육사랑신문 창간을 축하합니다.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고,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쭈니' 이용준 원장이 교육사랑신문 창간을 축하하는 사인과 함께 발전을 기원했다.
'쭈니' 이용준 원장이 교육사랑신문 창간을 축하하는 사인과 함께 발전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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