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노래한 시인, 만해 한용운
독립을 노래한 시인, 만해 한용운
  • 학생기자단
  • 승인 2018.05.2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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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연 학생기자(대전 괴정중2학년)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만해 한용운 선생이 지은 '님의 침묵'의 한 구절이다. 이 시(詩)는 사랑하는 님에게 쓴 것 같지만 사실은 독립을 바라는 마음에서 쓴 작품이다. 만해 한용운은 일제강점기 시기에 독립을 위해 애쓴 33인 대표 중에 하나다.

2018년 5월 13일 일요일. 교육사랑신문 학생재능봉사기자단의 일원으로 충청남도 예산군과 홍성군을 다녀왔다. 학생기자들이 두 지역을 방문한 이유는 일제강점기에 활동하신 애국지사들을 찾아 뵙고, 그들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생가지도 포함됐다. 한용운 선생은 1979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을 주도하여 감옥에도 가기도 했지만 독립의 대한 의지는 식지 않았다.

한용운 선생은 스님이시면서 시인, 독립운동까지 하신 훌륭한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용운 선생의 생가는 작았지만 사람들이 더 크게 만들어 한용운 선생을 기린 것 같다.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에서 학생기자들 모두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만해 한용운 선생 생가에서 학생기자들 모두 태극기를 꺼내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한용운 선생은 1919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어떤 민족이든 독립적으로 나라를 이끌어 갈 권리가 있다는 선언을 한 이후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독립선언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선뜻 손을 내민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서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고 소리높여 외치던 사람들조차도 막상 서명을 하라고 하니 꽁무니를 뺏다. 그래도 한용운 선생이 노력한 덕분에 33명의 민족 대표가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하겠다고 나섰다.

3월1일은 독립선언을 하기로 한 날이였다. 민족대표들은 식당에 모였고, 일본 헌병들과 부딪힐 위험성을 예견했다. 민족대표들은 식당에서 독립선언을 외쳤고, 곧 일본 헌병들이 들이닥쳤다. 그 길로 한용운 선생과 민족대표들이 붙잡혀 끌려갔다.

한용운은 평생 자신보다 민족을 먼저 생각한 사람이였다.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뜻을 굽혀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했지만 한용운은 단 한순간도 민족을 저버리지 않았다. 한용운의 모습은 우리 동포들에게 큰 본보기가 되었다.

만해가 쓴 시는 모두 독립에 관한 시였다. 특히 한용운에게는 사랑하는 님이 조국이었다. '님의 침묵'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긴 일을 님이 떠난 것으로 비유했다. 한용운은 떠난 님과 다시 만날 것을 믿었다. 비록 병에 걸려 숨을 거두었지만 그의 믿음 대로 우리 민족은 사랑하는 조국을 되찾았다.

학생기자들은 각 모둠별로 시 '님의 침묵'을 낭송하는 자리를 가졌다.
학생기자들은 각 모둠별로 시 '님의 침묵'을 낭송하는 자리를 가졌다.

한용운 선생 외에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지금 행복하게 살고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학생기자단 활동은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다녔던 것 같다. 항상 감사하고, 애국지사들을 기억하면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우리가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치욕을 당하지 않도록 우리 학생들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