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목/자사]꼬리를 무는 지적호기심으로 '민사고' 뚫었어요.
[특목/자사]꼬리를 무는 지적호기심으로 '민사고' 뚫었어요.
  • 권성하 기자
  • 승인 2017.11.24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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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어은중 김민주 학생 합격인터뷰

미국 아이비리그를 꿈꾸는 중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고등학교는 민족사관고다. 대전에서도 최상위 학생들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이유다.

대전 어은중학교 김민주 학생은 2018학년도 민사고 입시에서 당당히 합격증을 거머쥐었다. 민주 학생은 독특한 학력을 갖고 있다. 대학교수인 아버지(김영조 충북대 화학과 교수)를 따라 미국(아이오와주)에서 태어난 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초등학교를 다녔다.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니 영어는 웬만한 네이티브 수준이고, 관건은 수학과 과학일 터. 어렸을 때부터 사교육으로 수학?과학 영재를 만들어 내는 ‘교육도시 대전’의 또래 친구들과 치열한 경쟁이 예상됐지만 웬걸 ‘미국물’ 먹은 민주의 완승이다.

비결은 의외였다. 바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적호기심이었다.

“책을 읽다가 제 머릿속에 정리된 줄거리나 주제 해석이 혹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인식될지가 궁금해집니다. 그러면 습관적으로 인터넷이나 다른 책을 통해 여러 가지 관점을 수집하고, 연결해요. 호기심이 생기면 곧바로 책을 통해 확인하는 습관이 있는데 수업시간에 성선설이나 성악설 관련 내용이 나오면 부모님과 대화를 해보고, 관련 소설인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찾아 읽고, 또 영화까지 찾아보는 식입니다. 호기심이 꼬리를 물면서 자연스럽게 연계 수업이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민주는 책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고 공부하는 아이다. 어릴 때부터 손에서 책을 떼지 않았다. 창작동화, 만화, 위인전부터 세계적인 석학들의 에세이나 수학?과학분야 잡지까지 책은 가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단순히 독서량 늘리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일종의 퍼즐 맞추기 게임을 하듯 책을 읽어 나간다.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어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연관서적을 읽는 단계별 독서법을 통해 지식의 깊이를 다져나갔다.

민주의 민사고 합격 비결은 또 있다. 끊임없는 ‘수다’와 ‘대화’다. 남들 다 다니는 학원이나 과외공부보다 부모님과 오빠와 대화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큰 공부였다고 단언한다. 흔한 토플 IBT 점수도 없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학교에 다녀온 뒤 어머니를 상대로 미주알 고주알 떠드는 수다도 민주에게는 훌륭한 공부법이다. 어머니 김은아씨는 “민주는 조용하다 싶으면 자거나 책을 보는 아이이고, 이외에는 항상 떠들고 있는 아이”라고 말할 정도다.

“엄마는 대학에서 인류학과 영어를 전공하셨어요. 덕분에 제가 잘 모르는 것도 척척 답을 알려주세요. 그러니 엄마를 붙들고 수다를 떨 수 밖에요(웃음).”

가만히 들어 보니 민주의 수다는 내공이 있다. 이를테면 학교 선생님이 주신 프린트와 과목별 필기 노트를 펴고 공부할 때도 화이트보드에 써 가면서 강의식으로 공부를 한다. 가르치는 대상은 공부방에서 함께 살고 있는 말 못하는 ‘인형’이다.

“처음에는 인형을 앉혀 놓고 가르쳤는데 습관이 되다보니 나중에는 같은 반 친구들까지 가르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가르친다는 것은 내용을 완전히 알아야 가능해요. 가르치다가 막히는 곳이 나오면 제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곳인 셈이고, 저절로 복습을 하게 되니 일석이조였어요. 가끔 친구들과 질의응답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창의적인 대답이 나올 땐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사실 민주가 공부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데에는 집안 분위기가 한몫했다. 이공계 교수인 아버지 덕에 궁금한 실험은 즉시 해결하며 체득했다.

“최근에 신재생에너지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아파트 주변에 기름을 모아둔 드럼통을 본 뒤 동물성 기름과 식물성 기름을 분리수거하면 바이오디젤 효율성을 비교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기더라구요. 즉시 아빠를 졸라서 실험을 했어요. 결과는 식물성 기름에서 도출되는 바이오디젤의 에너지효율이 가장 좋았지만 생산량이 가장 작았어요. 결국 1대1의 비율로 섞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중학교 탐구주제로 제출했는데 전국학생과학전람회에서 동상을 받게 됐어요.”

여기에 또래 친구들에게서 얻는 자극을 스트레스가 아닌 동기부여로 전환하는 마음가짐도 훌륭하다. 단적인 예가 충남대 융합영재원에 지원했을 때다. 미국의 경우, 교사들이 학생을 관찰해서 관련 분야 영재를 추천하는 방식인데 한국은 학생과 학부모가 원서를 내고 선발되는 방식이다. 당연히 떨어지진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고, 합격한 뒤에는 친구들의 수학?과학 실력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한다.

“진짜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제가 모자란 부분은 노력을 해서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과학고에 다니는 두 살 터울 오빠의 도움도 컸어요. 막히는 문제가 나오면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력을 키웠습니다.”

민주는 민사고 합격 노하우를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민사고 면접 요령도 밝혔다. 민사고 면접은 국어, 영어, 수학, 과탐/사탐 가운데 택1, 인성(행복한학교생활) 등 5과목으로 진행된다. 이과계열인 민주는 과탐 가운데 ‘화학’을 선택했다.

“국어 면접은 평소 그대로의 모습을 답변했어요. 궁금한 내용을 부모님과 상의하고, 책과 영화를 보면서 해결하면서 감정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이 쓴 관련 글을 통해 배움을 키워갔다는 내용이죠. 국어 면접 질문은 문숙 시인의 ‘첫사랑’의 구절이었어요. 제목은 없이 내용만 제시됐는데 어떤 내용인 것 같느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누군가 그 선을 넘어와/ 한 발을 찍고 지나갔다/ 너였다’는 구절이 사춘기의 상처를 가진 청소년이 누군가 손을 내밀어주길 바라는 내용 같다고 답변했어요. 솔직히 나중에 제목을 알고 나서는 ‘망했구나’라고 생각했어요.(웃음)”

사실 아직 사랑을 모르는 중학교 3학년에게 첫사랑의 감정은 무리가 있었다.

“수학은 평소 좋아하던 과목이어서 자신있었어요. 질문은 증명과 심화 문제였는데 어떤 조건에서 만족하는 수를 찾거나 공통외접선에 다른 사각형 문제, 삼각형에 내접하는 같은 크기의 원에 대한 문제였어요. 각각의 문제는 4개씩 세트로 문항이 더 있는데 각각 20분씩이어서 시간 조절이 관건이었어요. 특이했던 것은 서서 강의하듯이 칠판에 증명을 하는 것이었어요. 풀이과정을 다가와서 보시기도 하고, 평소 인형을 가르쳤던 장면이 오버랩됐습니다. 영어 면접은 운이 좋았습니다. 왕따 문제에 대한 딜레마 상황에서 자신의 가치관을 말하고,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마침 어은중 영어수업 수행평가 때 왕따에 관한 내용을 다뤘어요. 그때 영어속담(Actions speak louder than words)을 한 것을 자연스럽게 설명했어요. 자신의 장단점을 묻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인성면접’은 학교생활을 잘할 수 있는지, 학칙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고 했다. 이미 민사고 지원을 마음먹은 뒤로 수시로 학교 홈페이지에서 재학생 일기나 학칙, 모의법정 등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아 뒀기 때문에 평소 생각을 조리있게 설명했다. 오히려 의외의 질문에 잠시 당황했다.

“인성면접에서 왜 수학?과학을 잘하는 아이가 과학고나 영재고를 지원하지 않고, 민사고를 지원했느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민사고는 융합형 역량을 가진 인재를 뽑는 곳이고, 나중에 수학?과학만 잘하는 아이들을 이끄는 것이 민사고 학생이며 제가 가진 부드럽고 융합적 능력이 민사고에서 더 발휘될 것이라고 답했어요.”

똑부러지는 대답이었다.

“면접 중에는 화학면접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생각보다 선행이 필요한 질문이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중학교 교과서에 있는 실험부분의 선에서 최대한 설명하려고 노력했어요. 결과는 합격했지만 화학에 대해 더욱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민주는 2단계 전형의 핵심인 ‘자기소개서’와 ‘비교과’ 준비에 대해서도 솔직담백하게 설명했다.

“학교 국어시간에 배운 간디 자서전을 떠올렸어요. 자서전을 쓴다는 생각으로 의미있는 활동을 정리하고, 사건을 중심으로 현재의 제 생각과 지금의 감정을 덧붙였어요. 타인들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평가하기 위해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제가 어떤 존재인지를 물어봤죠. 밝고 분위기 메이커라는 답이 대부분이었어요. 친구들은 공부를 잘 가르쳐 주는 멘토라는 평가를 해줬구요. 이런 점을 적극 부각시켜 자소서를 썼습니다.”

비교과에 대해서는 학내 대회를 적극 활용할 것을 조언했다.

“봉사는 오케스트라 활동을 많이 했어요. 에너지 쪽에 관심이 많아서 중2 때부터 대전녹색연합 회원에 가입했고,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시설 안내하는 봉사활동도 했어요. 천체관에서 봉사할 때는 마침 학교 수업에서 천체에 관한 것을 배웠는데 자연스럽게 연계수업이 됐어요. 나중에 학생부를 작성할 때 따져보니 봉사시간이 200시간이 넘더라구요. 나름 뿌듯했습니다.”

민주는 동아리활동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저학년 때는 과학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하지만 전반적으로 실험수준이 평이해서 호기심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중3 때 인문학 동아리에 가입했죠. 김준 선생님(사회?한국사능역검정동아리)과 홍정라 선생님(역사?인문학동아리) 덕분에 많은 가르침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면을 빌어 감사드립니다.”

민주의 향후 계획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에 입학한 뒤 하버드대학에서 석?박사를 하는 것이다.

“사실 하버드는 상징적인 꿈이예요. 아이비리그에서 제가 전공하려는 분야에서 더 훌륭한 명문대학을 찾을 생각입니다. 아이비리그에 대한 생각은 아버지의 안식년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무렵 온 가족이 미국 동부지역의 대학교를 탐방했던 기억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억이 아니라 진로와 꿈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