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학교는 사회적 나를 만드는 소중한 경험의 장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학교는 사회적 나를 만드는 소중한 경험의 장
  • 권성하 기자
  • 승인 2021.08.1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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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영 대전교사노조 중등부위원장

어려서 부모님과 떨어져 2년 정도 할머니와 지내야만 했었다. 그 때 소심한 꼬맹이였던 나는 숨어서 책만 읽었다. 9살 되고 초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부모님께 돌아갈 수 있어서 매우 기뻤다.

하지만 전학을 가야 했고 전학 간 새로운 학교에서 아는 친구도 없고 할 일도 없어 뒷자리에서 조용히 책만 읽었다. 독서한 횟수에 따라 교실 뒷벽에 스티커를 붙이는 판넬이 있었는데 내 스티커만 아주 많아서 선생님과 친구들이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중학교 1학년 때 수학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 되셨는데 그 분은 학생들의 잘하는 면을 늘 칭찬해 주셨었다. 생각해보면 그 당시 담임선생님의 칭찬과 격려 덕분에 자존감이 많이 높아진 것 같다. 그리고 주말에는 버스를 타고 종로에 나가 교보문고에서 3~4시간씩 책을 읽고 보내면서 그 시기를 보냈었다.

이런 경험은 고등학교에 와서도 이어졌다. 학교 내신 성적보다 모의고사 성적이 더 높게 나왔기 때문에 학교 선생님들은 의아해하셨다. 나는 그 당시 학교시험보다 수능형 모의고사 문제가 더 쉽다고 느껴졌었다. 이전에 선생님들의 칭찬과 격려, 독서하는 생활로 인해 수능형 모의고사 성적이 더 높게 나왔으리라. 특히 국어나 영어의 지문은 새로운 책을 읽는 것 같은 재미를 주었기 때문에 매달 치르던 모의고사 시험이 기다려지곤 했다.

중학교 때는 친한 친구들과 즐겁게 학교생활을 하였고, 고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로 교육청 경시대회에도 출전하고 수상도 하면서 학업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그 시절에는(90년대 중반) 공공 도서관이 많이 만들어지지 않아 학교 도서관이나 대형서점을 가야만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틈틈이 시간을 내어 찾아다니던 그 때가 아직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돌이켜보면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 지금의 나라는 사회적 존재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리고 소심했던 책만 좋아하던 한 아이는 학교라는 공간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책 읽는 것을 통해 칭찬의 경험을 획득하였고 이를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는 선순환이 이루어졌다. 사춘기시절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지냈던 경험과, 선생님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학습이 교사라는 장래희망을 만들어주었고, 사회적 성격을 형성해주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목적은 상급 학교로의 진학, 지식을 학습하는 것 등 다양할 수 있다. 진학과 지식습득 뿐만 아니라 학교를 다니는 시기에 사회인이 되는 과정을 겪고 성장해 나가면서 아이들에게는 나에 대한 가치, 세상을 보는 관점, 가치관, 정체감 등이 형성되는 너무나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나는 이제 학생이 아닌 선생님으로서 학생을 만난다,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를 만난 것이 아이의 인생에서 중요한 터닝 포인트가 되고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되니 아이들을 보는 시각이 좀 더 따뜻해지고 책임감도 커진다. 

현재 코로나-19로 이루어지는 비대면 수업에서 아이들의 자발적 참여가 어렵고 자기주도적 학습이 힘든 학생의 학업 성취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크고 교육부 차원에서의 대안 마련 움직임도 있다. 물론 학습결손과 학습능력저하도 큰 우려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더 큰 우려는 학생들이 학교라는 작은 사회를 통해 그곳에서 사회적 자아를 만들어가는 경험을 못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학교라는 곳에서 중요한 시기를 보내고 지금의 사회적 나의 모습으로 성장했는데, 지금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그런 기회가 덜 주어질까봐 현장에서 아이들을 보는 선생님으로서 늘 안타까운 마음이다. 또한 지금의 아이들을 걱정하는 어른들과 함께 좀 더 아이들을 위해 어떤 것을 해주고 배려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고 아이들에게 소중한 기회가 줄어들지 않기를 바라며 이 어려운 시기가 곧 해결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선영 대전교사노조 중등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