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조급한 마음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교실에서 보내는 편지] 조급한 마음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 권성하 기자
  • 승인 2021.08.03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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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정 대전교사노조 조합원(구봉중학교 교사)

얼마 전 동네 도서관에서 우연히 빌려본 책 한 권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우리는 코다입니다’(이길보라, 이현화-교양인)라는 책으로 코다라는 낯선 이름과 보라색 표지에 끌려 읽으면서 나는 우리 반 친구 찬호(가명)를 계속 떠올리게 되었다.

코다의 의미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Children Of Deaf Adults’ 책 표지에 쓰인 영문은 CODA라고 버젓이 대문에 소개하고 있었다.

CODA는 농인이 낳은 청인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모가 청각장애인인 비장애인을 뜻한다. 이 책을 읽으며 찬호를 떠올렸던 것은 바로 찬호가 코다였기 때문이다.

찬호는 수업 시간에 가장 적극적인 아이이다. 칠판의 판서를 모두 적어야 하고 수업 시간 중 모르는 것은 무조건 질문을 통해 의문을 풀어야 넘어간다. 때로는 너무 많은 질문으로 그 시간에 나가야 할 부분을 놓치거나, 다른 아이들 입장에서 대충 넘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들 때도 있을 정도여서 어쩔 수 없이 중간에 끊고 수업 후 남아서 질문을 하도록 유도하기도 하였다.

찬호가 이렇게 질문이 많은 이유는 우리 말로 된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찬호는 초등학교까지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농인 부모님의 만능 통역자로 청인의 세상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며 살아와서 어쩌면 일찍 철이 든 아이였다. 어려서는 제대로 된 동화책을 읽어본 적 없던 아이가 중학교는 할머니가 있는 대전으로 오면서 갑자기 이 아이한테 세상이 달라졌다.

교과서와 책은 온통 읽기 중심이었고 평가라는 굴레는 또 한 번 이 아이한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국어와 영어는 학습 부진 상태였지만 ‘무조건 노력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험 때마다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는 찬호가 대견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무조건 외우는 공부 방법이 내심 안타깝기도 하였다.

찬호에게 필요한 건 남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읽어왔던 쉬운 읽기였다. 동화책이나 쉬운 책을 거의 읽지 않고 지내왔다던 찬호에게 쉬운 동화책 10권을 골라주었다. 내용을 생각하되 감동을 느껴보라는 내 말에 30번을 읽으며 거의 외울 듯이 봤다는 찬호는 빨리 공부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조급함이 가득했다.

찬호의 꿈은 의사이다. 지금도 저녁마다 부모님과 수어로 대화를 하며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는 중2 평범한 아이한테 누가 조급함을 안겼는지 모르겠다. 확실한 건 이 아이는 꿈이 있고 그것을 위해 분명히 앞으로도 노력해 나갈 것이라는 점이다.

어린 찬호가 지치지 않고 꿈을 키워가길 바라보며 조급한 마음보다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2학기를 맞이했으면 좋겠다. 남들과 다른 환경에서 순수한 마음으로 자란 학생이 급하게 뛰다가 넘어질까 걱정된다.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가도 괜찮다고 토닥이고 싶다.

안유정 대전교사노조 조합원(구봉중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