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고사 '바깔로레아', 한국 입시 해법될까?
자격고사 '바깔로레아', 한국 입시 해법될까?
  • 권성하 기자
  • 승인 2021.06.29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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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확대-고교학점제 딜레마 속 '수능 자격고사' 도입 논란
학령인구 감소, 대학 구조조정 앞둔 대입 개편 필요성 커져
올해 2022학년도 대학 입시가 수능 확대와 고교학점제 도입이라는 모순 속에서 치러지면서 향후 '수능 자격고사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올해 2022학년도 대학 입시가 수능 확대와 고교학점제 도입이라는 모순 속에서 치러지면서 향후 '수능 자격고사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질 전망이다.[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올해 2022학년도 대학 입시는 수능 확대와 고교학점제 도입이라는 모순된 교육정책에서 치러진다. 학생과 학부모, 교실과 학교 모두 딜레마에 빠졌다.

그런 의미에서 '수능 자격고사'와 '절대평가' 확대 도입 논란도 뜨거워지고 있다. 

자격고사화와 절대평가 방식의 롤모델로 꼽히는 것이 프랑스의 바깔로레아 (Baccalauréat)다.

바깔로레아는 대입 자격을 위한 자격고사다. 절대평가제로 실시되고, 논술 및 철학 시험이 필수다. 약칭으로 '박(bac)'이라고도 부른다.

바깔로레아는 거의 모든 고교생이 마지막해에 시험을 치르는데 영국의 A-레벨이나 미국 고등학교 졸업시험처럼 표준화된 합격 증명서가 제공된다.  이를 통해 특정한 영역의 직업이나 대학 입학, 또는 전문 자격증이나 훈련을 받을 수 있다. 꼭 대학을 진학하지 않더라도 바깔로레아를 통과한 학생은 성인으로 인정되고, 취업에도 가산점이 주어진다.

김진환 콩코디아국제대학 진로진학센터장(전 성균관대 입학상담관)은 "프랑스 바깔로레아는 대학 입시를 위한 자격고사지만 주체는 고등학교 교사들이라는 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며 "바깔로레아가 단순한 입시제도를 넘어 취업의 중요한 기준으로 쓰이는 것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얼마나 충실히 이행했는지를 측정하면서 교사들이 얼마나 고교 교육을 책임졌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2021 바깔로레아, 어떻게 출제됐나

지난해는 코로나19로 바깔로레아 시험이 취소됐다. 하지만 올해는 예정대로 지난 6월 17일부터 실시됐다. 올해 일반 계열과 기술 계열 바칼로레아를 선택한 수험생은 52만 5760명으로 집계됐다.

바깔로레아의 합격 기준은 20점 만점에 평균 10점 이상이다. 평균 점수 8점 이하면 불합격으로 유급(재응시)된다. 보통 시험 계열은 일반 바깔로레아, 기술 바깔로레아, 직업 바깔로레아 크게 3가지로 구분하고, 일반 바깔로레아는 문학 계열, 경제사회 계열, 과학 계열로 나눠 시험을 치른다.

올해 2021 바깔로레아는 시험방식을 일반 계열과 기술 계열로 변경했다. 또 새롭게 구술 시험을 도입했다. 구술 시험은 지난 6월 21일부터 7월 2일까지 진행된다.
 
철학 시험에도 변화가 생겼는데 종전 '3개(2개의 주제, 1개의 텍스트) 중 택1'을 올해부터 '4개(3개의 주제, 1개의 텍스트) 중 택1'로 바꿨다. 시험시간은 4시간이다.

바깔로레아 첫날 필수과목인 철학시험 문제는 매년 전 세계적인 관심사다.

바깔로레아의 철학 시험 문제는 세계적인 관심사다. 올해 일반계열의 주제는 '토론은 폭력을 포기하는 것인가?' 등 4문제가 출제됐다. 사진은 '르 파리지앵' 캡쳐. [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올해는 일반 계열에서 ▲주제 1 - 토론은 폭력을 포기하는 것인가?(Discuter, est-ce renoncer à la violence?) ▲주제 2 - 무의식은 모든 형태의 의식과 무관한가?(L'inconscient échappe-t-il à toute forme de connaissance?) ▲주제 3 - 우리는 미래에 책임이 있는가?(Sommes-nous responsable de l'avenir?) ▲주제 4 - '텍스트 해설'로 에밀 뒤르켐의 '사회분업론(1893)' 발췌문(각 국민이 지닌 도덕의 사회성에 대한 부분) 등이 출제됐다.

기술 계열에서는 ▲주제 1 - 법을 어기는 것이 항상 부당한가?(Est-il toujours injuste de désobéir aux lois?) ▲주제 2 - 아는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인가? (Savoir, est-ce ne rien croire?) ▲주제 3 - 기술은 우리를 자연에서 자유롭게 하는가?(La technique nous libère-t-elle de la nature?) ▲주제 4 - '텍스트 해설'로 프로이트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1907)' 발췌문 등이 출제됐다.

올해 바깔로레아 기술 계열의 철학 시험은 '법을 어기는 것이 항상 부당한가?' 등 4개 주제가 출제됐다. 사진 '르 파리지앵' 캡쳐. [교육사랑신문 권성하 기자]

올해 처음 도입한 구술시험은 20분 동안 실시되며 수험생이 전공과 관련된 주제로 사전에 답변을 준비한 질문 2개 중에서 교사 2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이 하나를 골라 진행된다. 구술 시험 과정은 3단계이며 1단계(5분)는 수험생이 준비해온 답변을 말하고, 2단계(10분)은 심사위원과 토론하며, 3단계(5분)는 수험생이 앞으로의 진로 계획을 설명하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 수능 자격고사, 한국 대학 입시 해법될까?

대다수 입시 전문가들은 정부의 수능 확대 정책은 대입의 후퇴라고 입을 모은다. 점수로 줄세우는 대표적인 시험 체계가 수능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과목 선택의 자유를 주겠다면서 들고 나온 교육 정책이 고교학점제인데 과목선택권이 없는 수능을 확대하면 어쩌라는 거냐는 현장 교사들의 볼멘 소리도 터져나온다.

실제로 수능은 국가단위제 교육과정에서 학생 스스로 시간표를 짜서 과목을 선택할 수 없는 체제로 진행된다. 선택과목을 모두 인정할 경우, 대학들이 평가해야 할 과목 가짓수는 800여개에 달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정량평가인 수능시험이 이들 과목을 어떻게 객관적으로 점수화할 지도 어려운 문제다.

결국 수능확대와 고교학점제 도입이라는 상충된 시스템 속에서 '수능 자격고사화'가 꾸준히 대입 난맥상을 해결할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로서는 2021 수능 개편 방향이 사실상 자격고사화를 전제로 추진돼 온 것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물론 자격고사화는 대입 선발 방식 변화에 따라 교육 현장과 수험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학령인구가 급감하고, 대학의 구조조정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더이상 미룰 일도 아니라는 게 대입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단, 전제 조건은 있다. 대학의 평준화다.

종로학원하늘교육 오종운 평가이사는 "세계적인 입시 선진국은 절대평가 방식의 대입 시험을 치르고 있다"며 "프랑스(바깔로레아)와 독일(아비투어) 등이 대표적인데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러시아, 터키 등과 달리 대학 서열화가 없고, 평준화 시스템이기에 가능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