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의 학창시절] 박성효 전 대전광역시장
[명사의 학창시절] 박성효 전 대전광역시장
  • 권성하 기자
  • 승인 2019.02.01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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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프랑스 문학의 일인자로 꼽히는 장 지오노(Jean Giono)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L'homme Qui Plantait des Arbres)'은 감동적이다.

주인공 부피에는 매일 황무지에 100개의 도토리를 심는다. 대부분 싹을 틔우지 못하지만 나무 심기를 멈추지 않는다. 세월이 흘러 황무지는 울창한 참나무 숲이 된다. 숲에 냇물이 흐르고, 황무지를 떠났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어느새 황무지는 희망의 공동체로 바뀐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일을 해낸 사람이 있다. 바로 박성효 전 대전광역시장(제19대 국회의원‧대전 대덕구‧새누리당)이다.

민선 4기 시장 시절 나무 심는 것 밖에 모른다는 구설수를 견디며 3000만 그루 나무심기에 매진했던 그다. 지구온난화와 함께 미세먼지가 국가적인 과제가 된 지금 녹색성장에 대한 박성효 전 시장의 혜안이 놀랍다.

남들이 못 보는 것을 보는 것은 ‘경쟁력’이다. 이른바 ‘통찰(洞察)’이다. 평범이 비범이 되는 순간마다 통찰은 힘을 발휘한다. 박 전 시장은 그걸 호기심이라고 말한다.

“또래보다 늦자랐던 것 같아요. 말수도 없고, 학령기가 되도록 글자나 숫자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편이었어요. 그래서 어른들은 좀 모자란 아이라고 생각했다고 해요. 하지만 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머니 등에 엎인 아이가 무언가 눈길을 끄는 것만 보면 어머니 머리채를 당기면서 손가락질을 했다고 해요. 중고등학교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궁금하면 반드시 해결할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전 선화국민학교 1학년 입학식 모습. 박 시장은 선화다리를 중심으로 학군이 변경되면서 2학년부터 삼성국민학교를 다녔다.
대전 선화국민학교 1학년 입학식 모습. 박 시장은 선화다리를 중심으로 학군이 변경되면서 2학년부터 삼성국민학교를 다녔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지적호기심이 ‘행정가 박성효’를 키워낸 원동력이 된 셈이다. 물론 평범한 호기심이 비범한 통찰로 바뀌기까지는 또 하나의 재료가 있다. 박 전 시장이 최고의 멘토로 꼽는 ‘책’이다. 대전 삼성국민학교 시절 목척교 근처에 같은 반 친구 아버지가 운영하던 동국서림이라는 책방이 있었는데 책벌레로 소문 날 정도로 책을 읽었다고 한다.

“용돈이 생기면 곧장 뛰어 가서 책을 샀어요. 방과 후면 어김없이 찾아가서 종일 책을 읽었죠. 위인전, 세계사, 과학책 등 장르를 불문하고 읽었습니다. 책방 주인인 친구 아버지에게 꽤나 귀여움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꼬마 아이가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니 기특했던 거죠.”

박 전 시장은 삼성국민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대전중학교 입학식에서 부친 박규태 전 대전시노인연합회장(93세)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박 전 시장은 삼성국민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대전중학교 입학식에서 부친 박규태 전 대전시노인연합회장(93세)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가 책에 빠진 이유는 간단하다. 책을 통해 상상력과 감성이 풍부해지고, 꿈을 이루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있었다.

강력한 호기심이 끊임없는 동기부여로 바뀐 것도 책을 통해서다. 세상을 향한 시각도 커지고,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도 키울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위인전을 통해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과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는 정직과 봉사, 헌신의 가치를 알게 해준 책들입니다. 책 속에서 위대한 멘토들을 만난 셈이죠.”

초등학생 박성효가 워싱턴 대통령에게 배운 가치는 이순(耳順)에 이르도록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바로 ‘Honesty is the best policy(정직이 최고의 정책)’라는 상식이다.

“조지 워싱턴의 유명한 벚나무 일화는 정직이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최고의 가치이자 자본이 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직이 쌓여서 신뢰가 이뤄지는 거죠.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거짓말로 물러났고, 클린턴은 성추문 사건에서 자기고백으로 살아난 이유예요. 사회의 기능과 안전망도 마찬가지입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거짓말이 기술이고, 일상이고, 관용이라는 말이 있어요. 공약도 지키지 않는 정치인들부터 반성을 해야죠.”

그는 또 슈바이처 박사를 통해 봉사에 대한 신념을 배웠다고 했다.

“권력이나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의미있는 가치를 실천하는 사람이 위인이라는 간단한 진리를 보여준 분입니다. 기차의 1등석을 마다하고, 3등석에 타면서 자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3등석이기 때문이라고 했던 일화는 공직자의 길을 걸으면서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다짐은 성장하는 시기 내내 삶의 중요한 화두였어요. 정직하게 남을 도우며 타인의 인생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온 힘이었습니다.”

박 전 시장은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으로 작고한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과 마크 샌번의 ‘우체부 프레드’를 꼽았다.

“두 책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했어요. 당신들의 천국은 한센병을 앓는 소록도 주민들의 이야기인데 권력과 자유, 개인과 집단, 사랑과 공동체 문제를 담고 있어서 학생들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우체부 프레드는 미국인들의 직업에 대한 생각을 바꾼 책이예요. 작은 생각과 작은 정성, 작은 사랑이 쌓이면 인생이 달라지고, 인간에 대한 애정과 배려, 긍정적인 사고, 호기심과 아이디어를 키울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책입니다.”

책을 좋아한 아이는 공부도 잘한다. 자명한 진리다. 박 전 시장은 삼성국민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다. 대전중학교, 대전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대전고 1학년때 친구들과 함께 떠난 계룡산 야간 등반 모습이다.
대전고 1학년때 친구들과 함께 떠난 계룡산 야간 등반 모습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부터는 무전여행과 써클 여행을 즐겼다. 사진은 무창포로 떠난 써클 여행 모습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부터는 무전여행과 써클 여행을 즐겼다. 사진은 무창포로 떠난 써클 여행 모습이다.

그의 공부법은 치밀한 계획과 집중력이 핵심이다. 주간 단위나 월별 계획표를 세우고, 반드시 지키는 것을 철칙으로 했다. 지키지 못하면 몇 번이고 수정해서 달성하는 식이다. 일종의 자기주도 학습계획인 셈이다.

민선4기 대전시장 시절 모교인 삼성초등학교에서 까마득한 후배들에게 특강을 하면서 강조했던 것도 계획의 중요성이다. 이를 위해 일기를 써볼 것을 권했고, 짝꿍의 장점을 써 보라는 숙제도 냈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의 좋은 점을 눈 여겨 보는 사이에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전 시장이 전하는 성공하는 공부법의 또 다른 키워드는 ‘관찰’이다. 자연현상이나 과학실험 뿐만 아니라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관찰도 즐겼다. 친구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 친구의 평소 성향이라면 어떻게 하면 싸움이 벌어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다.

“수많은 성공한 위인들은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호기심과 관찰력입니다. 여기에 창의적 발상인 아이디어가 추가됩니다. 세상 누구도 안 하던 것을 하거나, 하던 것을 바꾸는 것에서 위인이 탄생합니다. 그것이 시대적 요구이기도 합니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강의를 할 때면 자기주도력과 문제해결력을 강조합니다. 두 가지 모두 관찰이 기본입니다. 뉴턴이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도 관찰에서 시작됐습니다.”

호기심 많고, 관찰을 즐겼던 아이는 원래 기자를 꿈꿨다. 언론인을 장래희망으로 삼은 건 역시 ‘텍스트’를 통해서다.

“고교시절 김대중 칼럼을 읽으면서 참 자유롭게 자기생각을 표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기자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어요. 학창시절 내내 사회학과에 진학해서 정의롭고, 자유롭고, 사람들에게 공감을 주고, 영향을 주는 언론인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하지만 동경하던 언론인은 되지 못했다. 두 번의 대학입시에서 인생의 쓴맛을 봤다. 전후기 분할모집이던 70년대에 재수까지 결심하고 두 번이나 서울대에 도전했지만 보기 좋게 낙방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후기대학인 성균관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님의 실망도 컸고, 스스로도 학교에 쉽게 정을 붙이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자연스럽게 접한 것이 고시공부다.

박 전 시장은 서울대 입시에서 낙방하면서 첫번째 좌절을 맛봤다. 실망감을 달래기 위해 대둔산에 칩거하며 각오를 다졌다.
박 전 시장은 서울대 입시에서 낙방하면서 첫번째 좌절을 맛봤다. 실망감을 달래기 위해 대둔산에 칩거하며 각오를 다졌다.

“전기대학 입시에 실패했지만 나도 수재라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다니고 싶은 대학이 아니어서 1학년 한 해를 막걸리와 당구장을 전전하면서 허송세월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을 증명할 방법을 찾고 있더라구요. 2학년이 되자 일단 졸업 전에 고시를 통과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3학년 가을에 행정고시 1차에 합격했습니다.”

박 전 시장은 공부하는 학생에게 지나친 자신감은 독(毒)이라는 말을 꺼냈다. 힘들이지 않고 1차 관문을 통과하고 나니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은 2차 시험 과목은 응시하지 않는 오만함을 보였다. 당연히 고시공부가 완성되지 않았다.

“대학원 2학년 무렵 군입대를 앞두고 가까스로 행정고시에 최종 합격했습니다. 처음부터 성실하게 2차 시험에 임했어야 했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중도 포기한 시간들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들었어요.”

기자의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 생각했던 ‘정의롭고, 자유로운’ 직업 철학에 부합하는 공무원의 길을 걷게 된 순간이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꿈을 이루지 못했고, 공직자의 길을 걷는다. 사진은 행정고시 합격 후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장교 후보생 훈련을 받던 모습이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소년은 꿈을 이루지 못했고, 공직자의 길을 걷는다. 사진은 행정고시 합격 후 공군교육사령부에서 장교 후보생 훈련을 받던 모습이다.

 

행정고시 합격 후 사무관 시절의 증명사진.
행정고시 합격 후 사무관 시절의 증명사진.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이 무슨 정의와 자유를 말할 수 있느냐고 반박하겠지만 나는 세상에 공무원만큼 정의로워야 하는 직업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무(公務)라는 말 자체가 정의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또 세상에 대한 다양한 관심과 이해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정신이 공무원을 활기 있게 만드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전 시장이 요즘 좋아하는 글귀가 있다. ‘호수가 산을 품는 것은 깊어서가 아니라 맑아서다’라는 글과 ‘아름다운 것은 찾아내는 사람의 몫이다’라는 글이다.

첫 번째 문장은 그가 즐겨 쓰는 한자성어인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맥이 같다. 논어의 자로편에 나오는 “군자는 화합하되 동(同)하지 않고, 소인은 동(同)하되 화합하지 못한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는 문장과 크게 같다.

박 전 시장은 가끔 화이부동을 비틀어 쓰기도 한다. 바로 ‘부동이화(不同而和)’다. 같지 않지만 화합한다는 뜻이다. 타인에 대한 이해와 인정을 바탕으로 하는 똘레랑스(tolerance)와도 뜻이 통하니 학생‧청소년들이라면 귀담아 들어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 문장은 사람에 대한 글이다. 그에게는 많은 사람이 있다. 민선 시장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으니 친지, 친구, 수많은 지지자가 있는 것은 당연한데 두 사람을 꼽았다.

대전고 1학년때 친구 이문표와 함께 찍은 모습이다.
대전고 1학년때 친구 이문표와 함께 찍은 모습이다.

“최정복 한국일보 대전본부장은 사랑하는 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부인을 위해 책을 한 권 썼고, 딸을 위해서도 한 권을 썼어요. 후배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멋진 사람입니다. 또 한 명은 포스코 임원으로 퇴직한 이문표 친구예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입주과외를 하며 학비를 벌 정도로 가난했지만 늘 너그럽고, 다 품어주는 참으로 존경할 만한 친구입니다. 지금의 와이프(백기영 여사)도 이 친구 부인이 소개했어요. 역시 아름다운 것은 찾아내는 사람의 몫인가 봅니다.(웃음)”

박 전 시장의 부인 사랑은 유명하다. 3년의 열애 끝에 학교 선생님을 꿈꿨던 부인 백기영 여사와 결혼했다.
박 전 시장의 부인 사랑은 유명하다. 3년의 열애 끝에 학교 선생님을 꿈꿨던 부인 백기영 여사와 결혼했다.

박 전 시장은 학창시절을 반추하면서 정직에 대한 가치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당신의 부모가 큰 병에 걸려 많은 돈이 필요한데, 어떤 사람이 공무원인 당신에게 돈을 대신 내겠다며 청탁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행정고시의 마지막 관문인 면접시험장에서 당대 최고의 헌법학자였던 김철수 교수가 던진 질문 내용이다.

“당시 나의 답변은 이랬어요. 미래의 가정된 상황을 놓고 답변하는 것은 진실성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받는다면 옳지 못한 것이고, 받지 않겠다고 한들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다만 공무원으로서 나는 그 돈을 받지 않으려고 진정으로 노력하겠다는 말씀은 드릴 수 있다고 했어요. 면접은 지식을 가늠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관이나 성실성을 보려는 겁니다. 정직하고 진실하게 답변하면 장황하게 지식을 늘어놓는 것보다 훨씬 사람의 마음을 끌게 되는 거죠. 학생 여러분도 정직의 가치를 키우는 동량으로 성장하길 기대합니다.”

박 전 시장은 3남 2녀의 장남이다. 대전고 재학 중에 부친 박규태 전 대전시노인연합회장과 모친 정영식 여사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
박 전 시장은 3남 2녀의 장남이다. 대전고 재학 중에 부친 박규태 전 대전시노인연합회장과 모친 정영식 여사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다.